티스토리 뷰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드렸던... "
시계가 아침 10시를 가리킬 무렵, 문에 매달아 둔 종이 딸랑거리고 사무실로 한 명의 여자가 들어섰다. 갓 20대는 된 듯한 여자는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오너가 누구인지를 눈으로 찾는 듯 했고, 이내 미기야의 자리를 발견하고 그 쪽으로 다가갔다. 여자가 들어올 때 달리 이상한 느낌은 없었지만, 사무실로 여자가 들어설 때의 종소리가 미묘하게 이상했다. 누군가 문의 종을 한번 더 잡고 일부러 흔든듯한 소리가 꼬리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소리가 미묘하게 이상한데? ’
종소리가 미묘하게 신경쓰였던 현은, 미기야가 의뢰인과 상담할 동안 영안을 사용했다. 그리고 영안을 사용한 현의 눈에 보인 것은 긴팔로 가린 그녀의 팔에서부터 길게 뻗어있는 무언가였다. 성인 여성의 팔 굵기 정도는 되는 무언가가, 마치 덩굴처럼 오른팔에 매여있었다. 오른팔 팔꿈치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팔을 타고 손 너머로 길게 뻗은 덩굴 끝에 마치 덩굴손처럼 손이 하나 달려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그 손이 종을 흔들었던 모양이다. 덩굴처럼 얽매인 것은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현은 눈이 시큰거렸는지 재빨리 안경을 썼다.
“어제 연락했던 의뢰인이 저 사람인가? ”
“네. ”
“일찍도 왔구만... ”
마치 종을 잡고 흔드는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종소리는 의뢰인이 사무실을 나갈때도 들렸다.
“저 사람, 저주받아서 온 거예요? ”
“저주... 저주가 맞긴 하지... 그건 왜? ”
“오른팔에 뭔가 덩굴같은 게 있었어요. 팔꿈치부터 시작해서... 그 끝에 손이 하나 달려있었고요. 종소리가 뭔가 이상해서 영안을 썼더니 보였어요. ”
“음... ”
“저주라는 건 어떤 저주야? 가서는 안 될 곳에 갔어, 아니면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어? ”
“둘 다 아니예요. 파이로씨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두 개의 무덤 중 하나가 그쪽 주인이었어요. 정확히는, 저주하는 쪽의 무덤이요. ”
“...... ”
저주하는 쪽의 무덤이라는 얘기를 들은 파이로는 의뢰를 받아줘야 하나 고민했다.
“저주한 것 때문에 반동이 온 거면 지 업보지, 구태여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어? ”
“저도 처음에는 그것때문에 거절하려고 했어요. 근데 그 분이 워낙 간절하게 부탁하시더라고요... ”
“저주는 왜 하게 된 건데? 누굴 저주했고? ”
그녀의 이름은 홍윤, 그녀가 저주한 사람은 고등학생때 같은 배드민턴부였던 같은 반 친구이자 절친 진소연이었다. 그녀가 소연을 저주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명화가 자신보다 배드민턴을 잘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배드민턴 국가대표였지만 지금은 은퇴했다. 그녀의 집에는 엄마가 국가대표일 때 올림픽에서 딴 메달과, 선수시절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가 전시된 공간이 있었다. 국가대표로서 어머니의 모든 것은, 집 책꽂이 두 칸에 담겨있었다. 그 메달들, 트로피들을 보면서 자란 윤은 자신도 열심히 운동을 배워서 엄마처럼 배드민턴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지만, 그녀는 아빠를 닮았는지 운동신경이 거의 없었다. 엄마와 함께 배드민턴을 할 때면 공이 네트를 넘기지 못 하거나, 라켓에 빗맞거나, 코트 밖으로 멀리 날아가거나, 셔틀콕을 치려다가 라켓을 놓쳐 라켓을 날리기 일쑤였다.
“의뢰인은 엄마가 배드민턴 국가대표인데도 배드민턴 실력이 좋지 않았던 걸 컴플렉스라고 여겼어요. ”
“그럼 의뢰인이 저주한 친구는 실력이 훨씬 좋았나보네? ”
“그렇죠. ”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처음 만난 소연은, 의뢰인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 금방 절친이 됐다. 그리고 클럽활동을 고를 때 운동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같이 배드민턴부에 입부하게 됐다. 배드민턴부를 담당하는 교사는 이번에 새로 부임한 체육교사로, 잘생긴 얼굴에 큰 키로 뭇 학생들의 시선을 잡아끌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의뢰인은 배드민턴부 활동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담임교사를 짝사랑하게 됐다.
그녀는 짝사랑하는 담임교사의 주목을 끌기 위해, 엄마가 국가대표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항상 담임교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헛방을 치거나 라켓을 떨구고, 부상을 입기 일쑤였고, 그런 그녀와 달리 소연은 깔끔한 스매시와 동작으로 담임교사의 주목을 받았다. 엄마가 배드민턴 국가대표였던 그녀와 달리 소연의 부모님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어째서 그녀보다 배드민턴을 더 잘하는건지 그녀는 의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담임교사의 칭찬을 가져가는 그녀가 미웠다.
“그럼 자기 실력을 키울 생각을 해야지, 친구를 저주하면 쓰나. ”
“그것도 그렇죠... ”
그녀가 소연을 저주하게 된 계기는, 부 활동에서 두 사람이 시합을 했을 때 담임교사가 했던 말이었다. 두 사람이 셔틀콕을 주고받는 것을 보던 담임교사는, 소연에게는 국가대표 나가도 될 것 같다면서 칭찬을 했고 윤에게는 어머님이 국가대표라던데 실력은 천지차이라고 했다. 물론 10대 소녀에게 충분히 기분나쁠 법한 말이었다. 거기다가 짝사랑하는 담임교사에게서 들은 말이기도 했고, 담임교사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본의아니게 윤의 콤플렉스를 건드려버린 셈이었으니. 담임교사는 아무 생각 없이, 엄마의 운동신경을 이어받지는 못 한 모양이라면서 한 말이었겠지만, 그것은 윤에게 있어서 상처이자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저주했다? ”
“네. ”
“뭐 이런... ”
“음... 솔직히 감수성이 풍만할 시기이고, 본인에게는 컴플렉스였으니... 그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예요. 거기다가 좋아하는 선생님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데다가 하필이면 평소에도 질투하던 친구와 비교하면서 그런 말을 했으니... ”
“그래,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래도 이건 너무 갔다고 본다. 솔직히 엄마가 운동선수인거랑 자녀가 운동 잘 하는거랑 뭔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의뢰인이 저주한 친구도 부모님이 선수 출신만 아니다뿐이지 운동을 했거나 운동신경이 좋을 수도 있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을 배웠겠지. ”
“그건 그래요. ”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는, 본관 뒤쪽에 낡은 돌계단이 하나 있었다. 학교가 지어질 무렵부터 있었다는 그 계단에는 청홍계단이라는 별칭과 함께 전해져 오는 전설이 하나 있었다. 오른발을 먼저 디디면서 홍사, 청사순으로 번갈아가면서 열두 칸을 오르고, 마지막 열세번째 칸을 오른 다음 말없이 박수를 한 번 치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계단에 있는 무언가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 대신, 소원을 빌 때 계단에서 붉은 뱀이나 푸른 뱀이 보이면 단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같이 따라오던 전설. 그녀는 그 전설을 이용해 소연을 저주했고, 배드민턴을 할 수 없게 만들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계단에 있는 무언가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줬다.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소연은, 생명은 건졌지만 오른팔 팔꿈치 아래로 절단해야 했다. 그나마 SD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졌고, 팔이 있었던 자리에 의수를 착용하긴 했지만 의수에 적응하는 데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동안은 SD의 병실에서 의수에 적응하는 재활훈련을 해야 했기 때문에 소연은 학교를 쉬어야 했다. 당연하게도, 더 이상 그녀는 라켓을 쥘 수도 없었다. 사고로 인해 운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소연은 부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결국 배드민턴부를 중간에 그만둬야 했다.
“그럼 그 친구가 사고 당한 후로는, 원하는 대로 선생의 관심을 끌었나? ”
“아뇨. ”
너만 없었어도, 그 일념으로 윤은 소연을 저주했고 소연은 결국 그 저주때문에 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잃고 배드민턴부를 탈퇴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딱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윤은 여전히 운동을 못 했고, 담임교사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담임교사에게 있어서는 윤도 소연도 둘 다 그냥 배드민턴부에 입부한 학생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딱히 어느 누구 하나 특별한 학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짝사랑하는 담임교사의 관심은 받지 못한 채 배드민턴부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거야말로 헛짓거리네. 그 친구만 없었으면 자기가 담임교사의 관심을 끌 거라고 생각해서 저주까지 했는데, 그 뒤로도 관심을 끌지는 못 했으니까. ”
“...... ”
“그럼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뭔데? ”
“저주의 반동때문이죠. 아까도 말씀드렸듯... ”
배드민턴부 활동을 마친 것도, 소연이 학교를 쉰 것도 전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윤은 저주따위는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아무 생각 없이 청홍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던 그녀의 귓가에 뱀이 쉿쉿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계단에 뱀이 많다더니, 슬슬 뱀이 나올 시기라고만 생각했다. 겨울에도 쉿쉿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몸이 허해서 그런 거라면서 넘겼다.
“그럼 현이 본 그게 계단에 있다는 존재... 뭐 그런 건가보네. 근데 그걸 여태까지 참았대? 이상현상같은 건 없었나봐? ”
“없었던 게 아니라, 참을만 했던 거 아닐까요? ”
“없었습니다. 아마 날을 잡아서 오른팔을 가져가려고 물었을 뿐인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의뢰인도 그렇게 말했고요. ”
“그럼 왜 여기 온 건데? 그대로 그냥 살지? ”
“그 이상현상이 지금 생겼으니까요. ”
한동안 잠잠했던 이상현상은, 그녀의 꿈을 통해 시작됐다.
어느 날, 윤은 붉은 뱀에게 팔을 먹히는 꿈을 꾸었다. 뱀은 천천히 그녀의 팔을 집어삼키면서 어깨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뱀이 집어삼킨 팔은 뱃속에서 서서리 소화되고 있었다. 산 채로 팔이 소화되는 감각을 느끼면서, 뱀이 어깨까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요 며칠새 윤이 꾼 꿈 속에서, 붉은 뱀은 천천히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삼켜진 손은 천천히 뱃속에서 소화되고 있었다. 뱀이 오른팔을 가져가려고 한다는 걸, 꿈을 통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도, 뱀이 꿈 속에서 소화시킨 팔에는 이상한 두드러기같은 것이 났다. 수포같기도 하고 두드러기같기도 한 것은, 마치 비늘처럼 생겼다. 딱히 가렵거나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물집을 터뜨려보려고 해도 물집은 터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물집과 달리, 의문의 수포는 눌렀을 때 딱딱한 뭔가가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뱀이 꿈 속에서 손을 소화시켜갈때마다, 물집이 계속 생겨났다. 그리고 점점 안에서 붉어지고 있었다.
수수께끼의 수포때문에 피부과에 갔을때도 생전 처음 보는 질환이라고 했고, 어떤 연고를 발라도 쉬이 낫지 않자 윤은 뭔가 방도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C도의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이 여기로 오라고 했나보지? ”
“그건 아니예요. ”
C도의 무당은 윤을 보자마자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느냐며 호통을 쳤다. 친구를 샘냈더라도 그런 짓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이건 윤이 받아야 할 업보라고 했다. 친구의 오른손을 저주로 날려먹었으면 네 오른손도 희생해야 한다면서. 저주를 할 때는 무덤을 두 개 파라는 말이 왜 있겠냐는 무당에게 어떻게 할 순 없는지 물었지만, 무당은 한사코 거절했다.
“무당이 안 해줬다고 여기로 오면, 여기서는 뭐 해줄 것 같았대? ”
“...... ”
“다른 사람을 저주한 주제에 자기는 살고싶다는거 아냐, 지금. 참 어이가 없네. 잘못은 해놓고 벌은 받지 않겠다는거랑 이게 뭐가 달라? 그리고 그런 독한 놈이면 우리가 섣불리 떼려고 했다간 오른팔 전체가 날아갈거다. ”
“전체가요? ”
“혹시 모르지, 괘씸죄로 어깨 윗부분까지 먹어치울지. 일단 그 계단인지 뭔기부터 조사해보자. 그래야 놈이랑 딜을 하든 떼어놓든 늦추든 하지. ”
라우드가 예의 그 계단에 대해 조사할동안, 파이로는 시로헤비를 찾아갔다. 그리고 푸른 눈을 가진 붉은 뱀에 대해 들어본 바가 있는 지 묻자, 시로헤비는 아마 그 뱀은 짝이 있을거라면서, 짝이 되는 뱀은 푸른색에 붉은 눈을 가진 뱀이라고 했다.
“그 뱀은 왜? ”
“우리쪽에 찾아온 의뢰인이 그 뱀의 힘을 빌어서 친구를 저주했어. 저주의 힘으로 친구의 오른팔이 팔꿈치까지 잘려서 그 친구는 결국 의수를 착용해야 했지. 그리고 그 뱀은 저주를 한 대가로 의뢰인의 오른팔을 노리고 있고. ”
“그건 어떻게 못 해. 그 녀석, 저주에 대한 대가에는 상당히 완고한 편이거든. ”
“나도 솔직히 어떻게 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혹시 그 뱀 말인데, 짝이 되는 뱀도 함께 움직여? ”
“둘이 하나니까. 합쳐서 청홍사야. ”
파이로는 그 계단이 청홍계단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럼 만약 그 뱀에게 저주를 하게 되면, 대가같은 것도 둘이 같이 가져가겠네? ”
“둘이 하나니까, 대가를 받은 다음 둘이 반으로 나누지. ”
“...그럼 뭔가 이상한데? 의뢰인의 꿈에는 붉은 뱀만 나와서 팔을 먹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네 말대로면 팔을 파란 뱀이랑 같이 나눠먹는 게 맞지 않아? 양 팔을 동시에 먹기는 애매해서 한 쪽만 나온건가? ”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걔들은 저주의 대가로 수명이나 운같은 걸 받아가지, 신체부위같은 건 가져가지 않아. 지금 괴담수사대에서는 어디에 대해서 조사중이야? ”
“그 계단. ”
“그건 좀 미루고, 빨리 저주받은 사람 소재지랑 생존여부 파악해. 그게 우선이야. ”
파이로는 SD에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소연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SD는 소연이 죽었다고 했다.
“울해 죽었어요. 자살해서... ”
“자살이요? ”
“네. 진소연 환자 맞죠? 제가 수술 집도하고 의수도 맞춰줘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뒤로 재활운동은 무사히 마쳤지만, 그거랑 별개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요... 그것때문에 심리상담도 몇 번 받았어요. ”
“혹시 그 환자, 자기가 왜 그렇게 된 건지 알고 있는 상태였나요? ”
“네. ”
전신마취상태로 잠들었을 때, 소연의 꿈에 붉은 뱀과 푸른 뱀이 나타났다. 붉은 뱀은 쪽빛의 푸른 눈을, 푸른 뱀은 혈색의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둘이 함께 움직이는 걸 보니 죽이 잘 맞는 것 같아보였다. 두 뱀은, 소연에게 자신들은 단지 저주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다. 소연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붉은 뱀은 소연과 가장 친한 사람이 소연을 저주했다는 것을, 푸른 뱀은 단지 질투심때문에 소연이 배드민턴을 하지 못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리고 두 뱀은 ‘그 사람은 너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 하고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널 저주한거야. 단지 그뿐이었어. 그것때문에 네 팔을 앗아가달라고 부탁했던거야.’라고 했다. 그 때, 소연은 자신의 팔을 잃게 만든 사람이 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장 친한 사람이 자신을 저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그녀의 배드민턴 실력을 질투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아마도, 알아서는 안 될 가장 잔인한 진실이었다. 두 뱀은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네 친구가 네 팔을 날려서라도 배드민턴을 하지 못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면서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소연이 눈을 떴을 때, 수술은 끝나있었고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로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아마 제일 친하다고... 제일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
“...... ”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어느새 계단에 대해 조사를 마친 라우드가 와 있었다.
“어떻게 됐어? ”
“그 계단을 오를 때 오른발을 먼저 디디고 홍사, 청사,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말한 다음 열세번째 단에서 박수를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조사해봤는데, 그게 다였어. ”
“금기사항같은건 없었어? 남을 저주하면 안된다던가... ”
“응. 요즘 애들은 그런거 잘 믿지도 않더만. ”
“그런가... ”
전해져 오는 전설을 한번 더 들은 것 외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 의뢰인이 저주했다는 친구 말인데. ”
“친구? 사고로 팔을 잃었다는? ”
“죽었어. 자살이래. ”
“자살? ”
“SD한테 연락해봤는데, 심한 우울증때문에 심리상담도 몇 번 받았던 모양이야. 그야 그렇겠지, 같이 하하호호하던 베프가 자기를 질투해서 저주하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고, 그것때문에 저주했고, 저주때문에 팔 하나가 날아갔으니까. 그것도 짝사랑하던 선생때문에. ”
“오너, 의뢰인은 친구가 죽은 거 알아요? ”
“글쎄요... ”
다음날, 미기야는 의뢰인을 불렀다. 의뢰인이 괴담수사대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미기야와 파이로가 있었다.
“바로 왔군. ”
“의뢰인분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의뢰인은 본인의 저주로 인해 친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
“사고를 당해서 오른팔을 잃었다고... 그것만 알고 있어요. 그 뒤로는 연락도 잘 안 해서... ”
“네 저주때문에 친구가 죽은 것도 몰랐단말이야? ”
“죽...어요? ”
“그래. 죽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 제일 친한 친구가 자기를 저주할정도로 증오했고, 그걸 실행으로 옮겨서 자기 팔이 날아갔다는 게 그 애 입장에서 얼마나 충격이었을 지 생각은 해봤어? 천만에, 니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 선생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것밖에는 없었겠지. 그래서 헛짓거리인 것도 모르고 애먼 사람을 저주해서 오른팔과 목숨을 날려먹었겠지. ”
“...... ”
“저주를 할 때는 두 명분의 무덤을 파야 해. 하나는 저주 받는 사람의 무덤, 다른 하나는 저주 하는 사람의 무덤. 그리고 저주를 한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 느낀 것 이상의 고통을 느끼는 게 섭리지. 이건 단순히 운이 좋고 나쁘다를 말하는 게 아냐. 팔을 날렸으면 너도 팔 하나만 내어주고 끝났겠지만, 상대가 저주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었다면 너는 네 목숨과 함께 더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지. ”
파이로는 윤의 팔을 휘감았던 무언가를 잡아 뜯었다. 그러자 윤의 팔에 돋아났던 수포가 말끔히 사라졌다.
“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갈 준비까지 마쳤는데, 네가 등 떠밀고 밀어넣을 필요는 없지. ”
알 수 없는 말을 한 파이로는, 무언가를 혼불로 깔끔하게 태워버렸다.
“네가 친구를 배신했다는 걸 죽은 친구에게 알려준 것은, 그 계단에 깃들었던 뱀들이다. 그네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거야말로 너에게는 가장 걸맞는 형벌이 될 거다. 단지 질투심때문에 친우를 저주해 한쪽 팔을 잃게 만들고 죽음으로 몰아간 벌. ”
“...네? ”
“과연 그걸 네 친구한테만 말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네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
“......! ”
붉은 뱀과 푸른 뱀이 소연의 꿈에만 나타난 게 아니라면, 윤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꿈에 나와서 윤이 소연을 저주했다는 것과 그것때문에 사고로 팔을 잃은 소연이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까지 얘기했다면, 배드민턴부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묘하게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던 이유를 그녀는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배드민턴 국가대표라는 것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이 묘하게 거리를 뒀던 것도 전부.
“이제 너는 어느 누구의 신뢰도 얻을 수 없을거다. 관짝에 들어갈때까지. ”
절친의 오른팔과 죽음을 대가로 그녀가 지불한 것은 모든 사람의 신뢰였다. 질투심때문에 친우를 저주해 죽음으로 내몬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설령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고 해도 말이다.
'괴담수사대-연재중 > Season 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XXIV-5. 빗 속의 여인 (0) | 2025.05.05 |
---|---|
XXIV-3. 신기원요 (0) | 2025.04.12 |
XXIV-2. 나를 죽이는 공간 (0) | 2025.04.09 |
XXIV-1. 나홀로 숨바꼭질 (0) | 2025.04.05 |
Prologue-XXIV. 발목 (0) | 2025.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