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헤비가 나타난 후로도 히다리는 한동안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아마, 자신의 엄마가 싫어했던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와 미기야는 어찌됐건 유일한 혈육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미안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 "어라, 너... 히다리? 미기야 동생 히다리지? " "...... 응. " "미기야 보러 온 거면, 잠깐 나갔는데. " "...... 아. ...이거... " 히다리가 내민 것은 포장 봉투였다. 하트가 그려진 봉투 안에는 버터링 쿠키가 들어 있었다. 쿠키의 반은 초콜렛에 담겨 있었다. 유산지로 쿠키 대여섯 개를 받치고 그 상태에서 봉투에 넣은 모양인지, 뒷면으로는 유산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갓 만들었는지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
"오너, 손님이 오셨어요. " 딸랑, 사무실 문에 달아 둔 풍경 소리가 울리면서 젊은 남성이 들어 왔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맞은 편에 보이는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이내 막 출근한 미기야를 발견하곤 의자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건넸다. 하얀 와이셔츠 위에 검정색 정장 조끼를 입고 같은 색의 바지를 매치한,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어딘지 모르게 지적이고 세련돼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의 발치에는 검은 색 가방이 놓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십니까? " "제 친구를 좀 살려주세요. " "......? " 그는 서류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그리고 종이 뭉치를 받아 들고 읽은 미기야는 흠칫, 놀랐다. 그 곳은 얼마 전 F시에서 관리하기로 했다던 어느 폐건물에 대한..
여느 때처럼 일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웃고, 울며, 움직이고, 살아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을 깨뜨리는 소식이 찾아오게 된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40년의 연기 인생을 살아오신 배우 김재호씨가 오늘 오후 4시 30분쯤 I시 A 맨션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김재호씨는 사고 현장에서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 이렇게 또 명을 달리하는 인간이 있군. " "하늘도 무심하시네요... 저 분, 정말 연기 잘 하는 배우였는데... 저 그래서 저 분 팬 사인회 하면 한번 가 보고 싶었거든요. " "나도 그래... 이렇게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었어.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서 악역 연기가 그렇게 일품이었다고 화제였다며? " "정말요? " "응. "..
그런 이야기가 있다. 마음에 드는 데다가 꼭 맞는 치마를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동안 괴현상에 시달렸다는 것, 알고 보니, 그 옷의 주인이 원혼이 되어 왔다 갔었다는 것까지. "이 스웨터, 정말 예쁘다! 자기야, 이거 어때? " "어... 응? " "이 분홍색 스웨터 말야. 집에 있는 까만 바지랑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 "아아, 응... 어울릴 것 같은데? " 옷을 쇼핑하러 갔던 여자는 매대에 걸려 있는 분홍색 스웨터를 발견했다.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녀의 눈에만 띄었던 그 스웨터를 말하는 것이다. 가게의 붉은 조명과 어우러져 한층 아름다운 자홍색으로 빛나는 그 스웨터를, 나연은 중고 옷 가게에서 사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녀는 이상해졌다...
"이 아이가? " 시트로넬은 다이어리 표지 안쪽의 사진을 보았다. 이목구비가 생긴, 그래도 이제 사람의 형태를 갖춘 아기였다. 일기장 앞쪽의 달력에는 스케줄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 시점에서 끊겼다. 뒷면의 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 저 자식은 답이 없군... " "...... " 일기장을 한장 한장 읽어보니, 일기장의 주인은 근식에게 강제로 범해진 후 원하지 않는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임에도 낳아서 키우고 싶었다. 그랬기에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근식은 사고를 위장해 죽여버렸다. 분명 다이어리의 주인도, 아이도 같이 명계에 있을 것이다. "전화 하셨어요? " 사무실 문이 열리고 미기야가 라우드와 함께 들어왔다. 파이로는 라우드..
여느떄처럼 밀린 잔업을 마치고 가기 위해 사무실에 앉아 있던 근식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흔히 사용하는 도메인은 아닌 듯 했지만 기업체의 도메인이겠거니 하고 메일을 열었던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섰다. 그를 경악시킨 것은, 메일에 쓰여 있는 단 한 줄. '아빠, 보고싶어. 만나러 갈거야. ' "오너, 손님이 오셨어요. " "아, 알았어. "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느긋하게 독서를 할 요량이었던 미기야는,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사무실로 찾아 온 근식을 맞았다. 어제 온 메일로 인해 충격을 받았는지, 그는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 "메, 메, 메일이... 이상한 메일이...... " 여전히 겁에 질려 말을 더듬는 그를 본 미기야는 근식에게 물 한 잔..
"포- 포포포- 포포포~ "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여자가, 그의 옆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하얀 원피스에 하얀 모자를 쓴, 어딘지 모르게 창백해보이는 여자였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마치 읊조리듯 그녀는 포포포, 하는 소리를 남기고 갔다. '저렇게 큰 여자가 있었나? 모델인가? '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날 이후로, 수수께끼의 여자는 그가 있는 곳 어디든 나타나서 창문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수수께끼의 여자를 쫓아달라고 오신 거죠? " "네... 요즘은 그 여자 떄문에, 창문을 아예 볼 수가 없어요. 제가 어디에 있든 창문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어요... 창문이 없는 곳은 갑갑해서 싫지만, 요즘은 집을 창문이 없는 곳으로 구했어..
여전히 전파를 타고 흐르는 정보들 사이에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다. 개중에는 사실인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유독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정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투신자살을 막는 유령'이야기였다. "엄마, 미안해요... 나 이제 힘들어서 안되겠어... " 온 몸에 멍이 든 남학생이, 피투성이 교복을 입고 어느 폐건물의 옥상에 올라왔다. 보통 건물의 옥상은 잠그기 마련이지만, 이 건물은 폐건물이 된 지 오래인데다가 아무도 사겠다는 이가 없어 관리자 역시 없었다. 너무 끝도 없는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왔다. 선생님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가, 그 녀석들은 집이 잘 사니까 분명 잘못했어도 대충 무마하고 끝낼 게 분명해. 그는 낡은 콘크..
언제부터인가,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자정이 넘어가고 대중교통이 끊길 무렵이 되면 움직이는 택시들 중, 운전기사가 없는 택시가 있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만 없을 뿐, 택시는 손님을 태워주고 택시비를 받는 것은 하고 있었으며, 운전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길이든 운전을 능숙하게 한다. 즉 무인 택시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었다. "무인 택시 소문, 진짜일까? " "에이, 설마... " "하지만, 어제 옆 부서 사람이 그 택시를 봤다는데? " "술에 취해서 착각한 모양이지. 애초에 운전자가 없이 차가 어떻게 돌아가겠어? " 처음에 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그 택시에 탔다는 사람도, 봤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처음에 인터넷에 글이 올라올 때는 거짓말이라고 치부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느긋한 오후,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낯선 여자가 들어왔다. 긴 머리에 하얀 코트가 세련되보이는 인상을 주는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제가 오너인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부탁입니다, 제 남편을... 도와주세요. " "남편분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 "집에서 나오지 못 하고 있어요... 일도 그만두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까만 그림자같은 게 자꾸 어른거린다고... 아무리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해도 움직이질 않아요... " "까만... 그림자요? " 중년 여성의 남편은 얼마 전 있었던 F시의 오피스텔 화재에서 살아남은 소방관이었다. 그 때, 화마는 그의 동료들 뿐 아니라 그 오피스텔에 있던 수많은 생명을 ..
달 하나만이 덩그러니 떠 있는 스산한 밤, 잠이 든 한산한 거리에 낯선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누군가를 주시하는 듯 했다. "저주할 때는 두 개의 무덤을 파라. 그 정도는 상식입니다. " 그리고 그녀는, 이내 주시하던 누군가를 쫓기 시작했다. 한적한 골목, 달이 비추는 곳에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만이 있었다. 그것은, 하늘에 뜬 달만이 지켜보고 있는 조용한 추격전. 쫓기는 자는 누군가를 저주했기 때문에, 쫓는 자는 남은 하나의 무덤을 채우기 위해 쫓는다. 다음 날.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제 D시의 어느 골목에서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됐다고 합니다. 사체는 10대 후반의 여학생으로 추정되며... " 어젯밤의 추격전 끝에, 결국 쫓기는 자는 죽은 모양이다. "하암... 또 살인사건이라니...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