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와 네 사람 앞에, 그 여자가 나타났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여자. 그녀의 눈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이 그 녀석인 모양이군. " "참가자... 어라, 참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데? " "그야, 이 몸은 이미 죽었으니까. " 벌건 대낮에 돌아다니는 죽은 자라니, 그녀는 파이로를 꽤 흥미롭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 녀석인 것 같은데... 얼굴만 봐도 딱 알겠구만. " "죽은 사람까지 알 정도면, 꽤 유명해진 거죠? 이거 재미있는걸~ " "지금 네녀석하고 장난 칠 때가 아니지. 이 녀석들의 목숨이 위험하거든, 너 때문에. " "어라?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정말 재밌네~ "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웃고는, 그 자리에서 뒤돌아 가 버렸다. "이상한..
자정, 어느 공원. 인적 하나 없는 이 시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빈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고, 종이를 준비한 다음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그리고 그 종이를 하나씩 건네받고, 바닥에 그린 무언가의 위에 서서 무언가를 중얼중얼 외운다. 그리고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 되리라는 건 그들도 몰랐다. "뭐야, 아무 일도 없잖아... 그 숨바꼭질 얘기는 역시 거짓말이었나......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 "뭐야, 선배도... 인터넷에서 떠도는 것 좀 그만 해요. " "잠깐만... 우리, 원래 여덟 명이었어? " "...응? " "우리, 처음에 일곱 명이 모인 거 아니었어요? 저랑 지연이, 혜미, 혜선언니, 성우선배, 우석이, 그리고 연우선배까지... 처음에 일곱명이 모였는데, 왜 ..
사실 그것은, 매우 오래 전 일이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있었다. 문이 없이 창문만 나 있는 양옥집 한 채, 동네 어른들은 그 집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외지에서 놀러온 녀석이 가자고 했었고, 마침 심심했던 우리들은 그 집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것이, 내 친구들을 습격한 죽음의 정체였다. 어느 건물 옥상, 낯선 여자가 무언가에 끌려오듯 꼭대기에 서 있었다. 마치 뒤에서 떠밀리듯, 그녀는 옥상에 올라 오는 것을 거부했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무언가에 떠밀려 떨어지려던 찰나. "위험해! " 막 떨어지려던 그녀를 파이로가 낚아챘다. 무언가가 그녀를 밀쳐 떨어지려던 찰나, 파이로는 그녀를 난간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살았다는 듯 안도의 ..
"자, 자, 조용. 오늘은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다... " 아침부터 시끌시끌한 교실로 들어선 선생님은, 출석부로 교탁을 몇 번 때려 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유리가 죽었다. " 순간 왁자지껄 하던 교실 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꽉 찼던 교실 한 켠이 비어 있었다. 그 책상의 주인인 유리는 오늘 나오지 않았다. 세상을 떴기 때문에 나오지 못 한 것이다. 누구도 그녀가 죽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저 어디 아픈 줄 알았다. 학교에서 시체가 발견됐다고 했을 때도, 설마 그게 그녀일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유리한테 마지막 인사라도 하러 가 봐. "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도, 교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말도 안 돼, 그 유리가 죽었다고? 어제까지만 ..
A시 외곽에는, 대학생들이 MT를 오거나 친구들이 놀러오기 좋은 펜션 촌이 있었다. 그 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마을에 모인 젊은 남녀는, 펜션에 짐을 풀자마자 펜션 앞에 흐르는 강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거나, 저녁 준비를 하거나, 싸 온 음식들을 정리하거나 하며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저녁은 삼겹살? " "콜! 맥주도 깔까? 병따개는 있어? " "응, 나 있어. 소주도 있고... 이만 올라와라, 저녁 먹자. " "응. " 불판 바베큐에 삼겹살을 올리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꼐 고기가 맛있게 익어간다. 내가 굽네 네가 굽네 장난스레 옥신각신하며 고기를 구울 무렵, 한 쪽에서는 아침에 사 온 야채와 쌈장을 놓고 나무젓가락을 나눠 주고 있었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먹기 좋게 자른 다음, 종이..
"으음... "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곳은, 고풍스럽게 꾸며진 기차의 객실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어 있었고, 그런 그녀를 맞은 편에서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막 잠에서 깨 헤롱헤롱한 그녀였지만, 그의 얼굴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어... 서...선배? 유진 선배가 왜 여기에... " "괜찮아? 오랫동안 자고 있던데... " "으음... 네...... 그나저나 여긴...... " 객실에는 그녀와 남자 외에 다른 사람들도 몇 명인가 더 있었다. 혼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그녀처럼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는 그녀와 달리, 그는 이 곳이 익숙한 모양인지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괜찮아지면 끝 칸으로 와. 그 곳에서 기다리..
"야,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를... " "헤헷, 괜찮아. 어차피 길고양이들인데 뭘. 동네 아저씨들도 발로 차고 그러니까 상관 없어. " 중학쌩 쯤 돼 보이는 소년이 장난감 총을 고양이에게 겨누고 마구 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친구가 만류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팡팡, 고양이에게 총알이 맞을 때마다 소년은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침 볼일이 있어서 나가던 코우기가 목격했다. "야, 임마! 니들 뭐 하는 짓이야! " "!!"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때릴 기세로 코우기가 달려들자, 두 소년은 도망갔다. 코우기는 소년들이 도망간 자리를 살폈다. 비비탄 총알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어 있었고, 고양이는 한쪽 눈을 뜨지 못 하는 상태였다. 한쪽 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면 낯선 문자가 와 있었다. 발신자도 명확하지 않은 수수깨끼의 문자는, 발신자가 누구인지도 밝힐 수도 없을 뿐더러 번호를 바꾸거나 핸드폰읋 해지해도 어떻게 해서든 문자가 날아왔다. 즉, 정상적인 경로로 보내지는 문자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문자는 괴상한, 마치 문자가 깨져버린... 혹은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누른 듯한 것이어서 내용 자체를 읽을 수도 없었다. 물론, 처음에 온 문자만이 그랬다. 이후로 오는 문자들은 점차 사람이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오기 시작했다. 이 문자를 받는 이가 누구인지, 보내는 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다만, 문자를 받은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니터 뒤에서 누군가를 조롱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 "휴우, 요즘..
"엄마, 미혜 어디 나갔어? " "아까 친구들이랑 여행 간다고 나갔는데, 무슨 일이야? " "하아... 어디로 간대? " "멀리 나간다고만 하던데... 한 2박 3일 간다고 하더라. " "아... " "그런데 미혜는 왜? " "얘가 내 옷을 입고 나갔어. 왜, 저번에 샀던 그 까만 가디건 있잖아. " "걔도 참, 아무리 그래도 오빠 옷을 입고 나간다니... " 그리고 그의 동생은, 사흘 후에 돌아왔다. 문제는, 돌아오긴 했지만 갑자기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방에 들어가도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아무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돌아오게 된 경위도, 경찰이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을 발견해서였다. 경찰이 말하기로는, 발견 당시부터 쭉 이 상태였다고만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친구들 ..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 겨울 아침에 막 주문한 따뜻한 아메리카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는 집기만 해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 질 정도였다. 따뜻하다못해 뜨거워서 집기 힘든 컵에 홀더를 끼우면 딱 좋게 따끈따끈해진다. 그리고 그가 쟁반 위에 올려진 커피에 손을 뻗는 순간... "!!" 그의 손끝이 닿은 부분부터 커피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분명 그가 잡은 커피는 방금 막 내인 원두와 따뜻한 물을 적당히 섞은 아메리카노가 맞다. 그와 같이 따뜻한 커피를 주문한 친구는 커피가 뜨거운지, 컵을 잡기가 무섭게 손을 귀로 가져간다. 그리고 이내 홀더를 끼운 다음에야 따뜻한 지,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손이 닿은 커피는 같은 날 같은 시에 만들었음에도 얼어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