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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h_작가2026. 7. 12. 00:00

“죄인은 여자친구와 연애를 하면서 여자친구에게 꽤나 마음의 상처를 입히셨군요. ”

하데스는 재판정에 들어선 죄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하나씩 낭독했다. 여자친구가 못생겼고 뚱뚱하다고 가스라이팅하고, 다른 여자와 비교하면서 여자친구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여자친구에게 성형 및 다이어트를 강요한 죄였다. 여자친구는 건강상의 문제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었고, 몸에 칼을 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죄인은 그 사실을 알고 만났으면서 그런 짓을 했다. 

“죄인은 여자친구가 건강상의 문제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다이어트를 강요하면서 여자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신겁니까? ”
“그건… 조금만 빼면 되는데 그걸 안 하니까 좀 세게 말한거죠. 비만이 건강에도 안 좋다고 하잖아요. ”
“다른 법관 역시 이에 대해서 질문하겠지만, 죄인은 상대가 건강상의 문제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했습니다. 죄인과 연애관계를 계속하려면 죽으라고 등 떠민 격이예요. 이건 이유가 뭐가 됐든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
“하데스의 말에 동의합니다. ”

죄인은 비만이 건강에 좋지 않냐, 조금만 빼면 되는데 그걸 안 해서 세게 말한거라고 항변했지만 하데스는 여자친구가 건강상의 문제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만났고, 건강상의 문제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강요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죄인은 여자친구가 건강상의 문제때문에 다이어트를 못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
“그렇습니다. ”
“여자친구가 이에 대해서 몇 번이나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죠? ”
“그렇습니다. ”
“그럼에도 죄인은 여자친구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그럴거면 여자친구를 왜 만난겁니까? 본인 스타일인 쭉쭉빵빵한 미녀를 만났으면 여자친구에게 다이어트도, 성형도 강요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요? ”
“다 좋은데 그거 하나만 걸렸으니까요. 성격도 좋고, 돈도 많고, 현모양처인데 외모만 좀 걸렸습니다. ”

죄인이 여자친구를 만난 이유는 외모 빼고 다른 부분이 다 좋아서였다. 집에 돈도 많고, 그럼에도 허투루 돈을 쓰지 않고, 성격도 좋고, 현모양처 스타일에 요리도 잘 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딱 하나 걸리는 게 여자친구의 외모였다. 여자친구는 건강상의 문제로 다이어트를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살집이 있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죄인은 이를 알면서도 외모를 뺀 다른 것들 때문에 여자친구를 만났다. 

“죄인은 계속해서 다른 여자와 여자친구를 비교하면서도, 막상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여자친구를 붙잡았습니다. ”
“…… ”
“그때마다 여자친구를 붙잡으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지만, 하루도 채 못 가서 다시 여자친구를 다른 여자와 비교하고, 다이어트를 강요했죠. …여자친구를 붙잡을 때 그 사과는 진심이셨습니까? ”
“그건… 그때만큼은요. 여자친구를 놓치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
“여자친구와 결혼까지 생각중이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이런 분이랑 결혼했다면 외모를 핑계삼아서 불륜을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혹시 모르죠, 건강상의 문제로 임신이 어렵다고 했음에도 억지로 아이 하나만 낳자고 조르고, 가스라이팅했을 지. ”
“헤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

아이러니하게도, 죄인은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사과하면서 여자친구를 붙잡았다. 하지만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은 하루도 채 못 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여자친구에게 모멸감을 주고, 다른 여자와 비교하고, 다이어트를 강요했다.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외모가 아닌 다른 조건들을 놓고 봤을 때 놓치기 아까웠기 떄문이라고 생각한 헤라는 결혼이 성사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면서, 분명 결혼이 성사됐다면 아마 불륜을 저질렀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임신이 어렵다고 했음에도 임신과 출산을 강요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죄인에게 있어서 뭐였습니까? ”
“…… ”
“적어도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한거였다면 지금처럼 입을 다물고 있진 않을텐데요. 죄인, 여자친구에게 외모가 아닌 다른 조건들이 없었더라도 여자친구를 사랑했을 것 같나요? ”
“…… ”

아프로디테가 죄인에게 여자친구는 뭐였던건지, 외모 외에 다른 조건들이 없었더라도 여자친구를 사랑했을지 물었지만 죄인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아프로디테는 죄인이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그나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놓치기 싫었을 뿐인 것을 지적했다. 그 와중에, 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시원시원한 얼굴에 초승달 장식이 달린 귀걸이를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제우스님, 제가 형벌을 하나 제안해도 괜찮을까요? ”
“어떤 형벌입니까? ”
“죄인은 여자친구가 건강상의 이유로 다이어트를 못 함에도 다이어트를 강요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말이죠. 거기다가 여자친구가 체질상 다이어트를 못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여자들과 비교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먹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죠? ”
“그랬죠. ”
“그럼 죄인도 똑같이 채소만 먹게 만들어주세요. 눈 앞에서 상대가 고기를 먹는 걸 보면서도 본인은 샐러드만 먹어야 하는 비참함을, 자기가 여자친구에게 강요하려고 했던 게 뭐였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세요. 그리고 자기가 여자친구에게 줬던 모멸감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 주세요. ”
“아르테미스의 판결에 동의합니다. 여자친구한테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피부로 느끼게 해 주세요. ”

아르테미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제우스는 죄인에게 ‘자신이 여자친구에게 그 동안 했던 짓을 피부로 느껴보라’면서 판결을 내렸고, 앞으로 고기나 밀가루같은 먹거리는 남이 먹는 걸 바라보기만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얌마, 축하한다. ”
“와줘서 고맙다. 제수씨도 와주셔서 감사해요. ”

죄인에게는 생전에 그렇게나 바랬던 얼굴도, 성격도, 재력도, 몸매도 전부 완벽한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그는 지금 여자친구와 함께 친구의 결혼식장에 왔고, 축의금을 내고 식을 본 다음 함께 부페에 왔다. 부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산해진미의 냄새를 맡은 그는 뭘 먼저 먹을지 고민하면서 접시를 들었고, 제일 먼저 초밥이 있는 곳으로 가 초밥 하나를 집으려고 했다. 

“먹지 마. ”
“어? ”
“그거 먹지 말라고. ”
“…왜? ”
“오빠 관리해야돼. 초밥, 고기, 파스타 금지니까 샐러드만 먹어. ”

신난 듯 초밥을 집으려던 죄인을 여자친구가 말렸다. 멈칫한 죄인에게 여자친구는 ‘요즘 살이 좀 쪘다’면서 관리 좀 하라고 핀잔을 줬다. 여자친구의 접시에 가득 담긴 초밥도, 고기도, 파스타도 전부 금지된 그의 접시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생전에 죄인이 여자친구에게 그렇게나 강요했던 샐러드 뿐이었다. 

여자친구의 접시 위에 놓인 파스타는 면의 익힘도 알맞았고, 새빨간 토마토 소스에 해산물과 고기를 넣고 볶아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 옆에 있는 스테이크는 조명을 받아 윤기에 가까운 빛을 내고 있었으며, 여자친구가 칼로 썰때마다 잘 익은 고기냄새와 함께 빨간 핏물이 배어나왔다. 초밥에는 정갈하게 잘라서 얹은 생선과 와사비가 올라가 있었고, 그 옆에 놓인 고르곤졸라 피자는 얇은 도우에 적절하게 구워서 여자친구가 먹을때마다 바삭바삭 소리가 났다. 

“음~ 맛있어~ ”
“…… ”

연신 산해진미를 먹는 여자친구를 보면서도 그는 종류별로 놓여있는 샐러드만 먹어야 한다. 생전에 여자친구에게 강요했던 샐러드 식단을, 각종 산해진미 앞에서 강제로 해야 하는 처지였다. 샐러드 한 접시를 비우고 이건 괜찮겠지, 하면서 한 그릇 가득 푼 그릭 요거트에 그래놀라를 얹고, 단 맛을 위해 딸기잼과 꿀도 살짝 넣은 다음 자리로 가져가자 여자친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고, 그런 여자친구를 본 죄인은 여자친구의 눈치를 보느라 요거트는 반도 다 못 먹고 남겨야 했다. 

“배부르다~ ”
“나도… 어? 잠깐만, 나 아직 안 탔어! ”
“오빠는 집까지 뛰어와야지. ”
“뭐? ”

배부른지 식사를 마치고 나온 여자친구가 차에 올라타자, 죄인 역시 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차 문을 잠갔고, 죄인이 아직 안 탔다고 하자 ‘그래놀라도 당덩어리, 꿀도 당덩어리, 딸기잼도 당덩어리’라면서 집까지 뛰어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차를 몰고 가 버렸다. 

가쁜 숨을 쉬면서 집까지 뛰어온 그가 헉헉거리면서 문을 열었을 때, 결혼식장 부페에서 맡았던 고기냄새가 다시 풍겨왔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를 반긴 여자친구는 스테이크와 그린빈을 불에 올려놓고 매시드 포테이토에 캐비어를 얹고 있었고, 뒤집개로 고기를 한번 누른 다음 치익, 소리가 나자 고기를 한 번 뒤집었다. 

“그새 장도 봤어? ”
“응. ”
“와, 스테이크… 뭐야, 왜 하나밖에 없어? ”
“오빠는 이거 먹어야지. ”

내 몫의 스테이크는 어디 있냐는 죄인에게 여자친구는 두부와 야채가 가득 든 샐러드를 건넸다. 부페에서 먹었던 샐러드는 드레싱이라도 있었지, 이 샐러드에는 고기나 견과류는 물론이고 드레싱 한 방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자친구에게 드레싱은 어디 있냐고 묻자 여자친구는 드레싱도 당덩어리라 살 찐다면서 소금이랑 후추만 뿌렸다고 했다. 

“이게 뭐야, 지금 이걸 나보고 먹으라고? ”
“아까 먹은것만 해도 살 뒤룩뒤룩 찔 것 같아서 굶길까 하다가 그래도 배고프면 안될 것 같아서 밥은 주는거니까 얌전히 먹어. ”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어딜 봐서 살이 쪘다는건데? ”
“싫으면 헤어지고 나가면 돼. 살도 뒤룩뒤룩 찌고 못생긴 자기를 누가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
“…… ”

싫으면 헤어지고 나가라는 말에 그는 얌전히 샐러드볼과 포크를 받아들고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여자친구가 스테이크 먹는 거나 반찬 삼아서 먹어야지, 했지만 드레싱 하나 없이 두부와 야채만 있는 샐러드는 어떻게 해도 먹기가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나마 닭가슴살이나 그래놀라라도 곁들여서 먹으면 양반이지만, 이 샐러드에서는 그런것들도 기대할 수 없었다. 교도소 밥도 이렇게는 안 줄 것 같았다. 샐러드의 맛보다도 눈앞에서 여자친구가 핏물을 뚝뚝 흘리는 스테이크를 먹는 걸 보는 게 제일 고역이었다. 다 아는 맛인데, 나만 못 먹다니. 

“으~ 살집. 오빠 몸만 보면 젖던것도 마르겠어. ”
“…… ”

그는 오랜만에 분위기 잡고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지려고 했지만, 여자친구는 그가 분위기를 잡자마자 정색하고 ‘살집때문에 젖던 것도 마르겠다’면서 거절했다. 처음 사겼을 때는 언제 잠자리 가질거냐고도 물어보고, 장어나 굴같은 것도 챙겨주던 여자친구였는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별로 살이 찌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 동창 모임 다녀올게, 저녁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먹어. ”
“늦어? ”
“늦을지도 모르니까 먼저 자. ”
“거기 남자도 있어? ”
“그럴지도? 동창 모임이니까. ”
“뭐야,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나가면 어떡해? ”
“그럼 오빠는 언제쯤 살 빼서 나랑 같이 나갈건데? ”
“…… ”
“그런 말 할 시간에 빨리 살 빼서 보기 좋아질 생각이나 좀 하지? 오빠 데리고 나갈때마다 사람들이 살쪘다고 하는 거, 얼마나 창피한 지 알아? ”
“…… ”

남자도 있는 모임에 나간다는 것에 불평하자, 여자친구는 그런 말 할 시간에 살 뺄 연구나 하라고 면박을 주고 현관문을 나섰다. 여자친구가 동창 모임에 간 후 냉장고에 있던 샐러드를 꺼내보니, 드레싱은 하나도 없이 풀때기만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고기라고 할 만한 건 있었지만, 한 입 먹어보니 닭가슴살이나 삶은 고기가 아니라 퍽퍽한 콩고기였다. 요즘은 콩고기도 꽤 고기같이 정교하게 나온다지만, 이건 정말 퀄리티가 낮은 콩고기였다. 

여자친구는 이따금 남자인 친구들과 달달한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고, 그걸 보는 죄인이 누구인지 물어볼때마다 그냥 친구라고 했다. 가끔은 남자인 친구들과 죄인을 비교하면서 누구는 이런데~ 우리 오빠는 왜 이럴까~ 라고 하기도 하고, 남자인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걸 똥 씹은 표정으로 보고 있으면 오빠가 살 빼서 잘생겨지면 연락을 줄이겠다, 오빠가 뒤룩뒤룩 못생기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안 했다면서 역으로 화를 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
“뭐야, 살이 더 쪘네? 왜 그러지? ”

이정도로 빡세게 먹었으면 살이 좀 빠졌겠지, 그는 몸무게를 재기 위해 체중계 위로 올라갔지만 몸무게는 역으로 더 늘었다. 저울에 올라선 그의 반응을 본 여자친구는 먹는 양이 문제인 것 같다면서 양을 더 줄이겠다고 했고, 샐러드와 샐러드 위에 올라가는 두부의 양을 진짜 반으로 줄였다. 심지어 저녁에는 샐러드도 아니고 계란 하나분의 흰자와 고구마 반 개를 먹으라고 줬다. 

“이걸 누구 코에 붙여? 더 줘. ”
“몸무게 더 늘어난 거 안 보여? 운동 안 할거면 먹는거라도 줄여. ”

여자친구의 타박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구마 반 개와 계란 흰자를 먹었다. 

“요즘 여자친구가 자꾸 살 빼라고 해서 죽겠다. ”
“살? ”
“어… 자꾸 풀때기만 먹이더니, 요즘은 먹는 양이 문제인 것 같다고 그 양도 줄이고 저녁에는 고구마 반 개랑 계란 흰자만 줘. 지금도 술 못 마시잖아, 나. ”
“어리고 예쁘고 돈 많은 여자가 만나주는데 그정도는 해야지, 인마. ”
“얌마, 여자친구가 건강 관리도 해주는구만 뭐가 불만이야? 배부른 소리좀 하지 마라. ”
“야, 니 여친같은 사람 내가 만났으면 알아서 다이어트 시작했어. ”
“…… ”
“얌마, 니 여친 좋다는 남자가 한둘이냐? 너 그러다가 다른 남자가 니 여친 채가면 어쩌려고 그래? ”

여자친구때문에 서러웠던 것들을 다 털어놨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배가 불렀다’, ‘여자친구가 건강 챙겨주는거에 감사해라’, ‘나같으면 진작 다이어트 시작했다’면서 죄인을 타박했다. 그 중에서도 죄인에게 비수가 되었던 말은 ‘전여친한테도 그랬다가 헤어지지 않았나? 딱 자기가 했던 거 그대로 돌려받는 중이네.’였다. 생전에 여자친구에게 했던 그 이상으로, 그는 지금의 여자친구에게 당하고 있었다. 

“자기야, 나 좀 데리러 올 수 있어? ”
“술 마셨어? ”
“아니. ”
“안주는? ”
“안 먹었어. ”
“금방 갈게. ”

여자친구는 데리러 와 달라는 말에도 뭘 먹었는지를 먼저 물었고, 죄인이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하자 그제서야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곱창을 시켜먹을 때도, 소시지 안주를 리필할때도, 기본 안주로 주는 마카로니 과자조차 그는 입에 대지 못 했고 술 대신 물을 마셔야 했다. 가뜩이나 그것때문에 서러운 마당에, 여자친구는 죄인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라도 할 요량인지 친구들에게 진짜 아무것도 안 먹었는지 물었다. 친구들이 하나도 안 먹었다, 마카로니 과자에 손도 안 대더라고 하니까 여자친구는 그제서야 죄인을 차로 데려갔다. 

“영양실조입니다. ”
“…네? ”
“요 며칠새 고기 없는 샐러드, 계란 흰자, 고구마… 탄수화물도 많이 부족하고, 단백질도 모자란 식단을 장시간 드셨으니 영양실조가 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
‘결국 그렇게 됐구나… ’

건강검진에서 영양실조 진단을 받은 죄인은 사랑보다도 건강이 더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했다. 적어도 그 동안 사귄 정이 있으니까, 집 구할떄까지 며칠만 더 지내게 해 달라고 하면 들어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간 죄인을 반긴 건 커다란 상자였다. 

“마침 왔네. ”
“……! ”

커다란 상자 위에 작은 상자를 올리던 여자친구는 어안이 벙벙한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여자친구의 옆에는 건장하고 훨씬 잘 생긴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는 죄인을 이 사람이 전남친? 이라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오빠가 살이 뒤룩뒤룩 쪄서 진짜 만나기 창피했어. ”
“…… ”
“짐은 거기 다 담아놨으니까 용달을 부르던, 들고 가던 알아서 해. ”

졸지에 차여버린 그는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러게 관리 좀 잘 하라니까’, ‘그렇게 불평하더니 차였냐? 그래도 이제 고기는 실컷 먹을 수 있겠네?’라면서 그를 조롱했다. 하, 이제 어디로 가지. 급하게 지낼 모텔방이라도 알아보고 있는 그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자, 그는 온 몸으로 짐이 든 상자를 막았다. 

금방 지나갈거라 생각했던 비가 큰 비가 된 탓에, 짐이 든 상자가 젖는 걸 막으려던 죄인이 되려 쫄딱 젖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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