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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h_작가2026. 7. 5. 00:00

“죄인, 자식들에게 미안하긴 합니까? ”

평소처럼 재판을 진행중인 명계 법정에 죄인이 들어섰다. 5~60대는 되는 초로의 남자가 들어서고 재판이 시작되자, 데메테르는 죄인에게 ‘자식들에게 미안하기는 한 지’를 물었다. 몇몇 법관들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지 지켜보고 있었고, 몇몇 법관들은 다음 질문을 준비하면서 죄인의 생전 행적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죄인은 간경화로 사망했고,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술을 마셨습니다. ”

죄인은 간경화로 죽기 전까지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까, 간경화 진단을 받고 간 이식 수술까지 받은 후에도 말이다. 데메테르가 죄인에게 자식들에게 미안하긴 한 지 물어본 건 죄인의 자식들 중 두 아들이 간 공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딸도 하나 있었지만, 그 딸은 입양아라 조직 적합성이 맞지 않아서 간 공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죄인의 성격상 딸도 적합했다면 아마 딸의 간 역시 공여받았을거고, 그 뒤로도 주구장창 술을 달고 살았겠지. 간 이식 수술을 받고도 술을 계속해서 마신 것 때문에 두 아들들이 연을 끊었음에도 술을 달고 살다가 간경화로 죽은 걸 보면 말이다. 

“두 아들이 간을 제공해줬고, 두 번이나 간 이식 수술을 받았음에도 술을 끊지 못 하고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죠. 그것도 뇌사자 간을 이식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이 건은 다른 법관의 관할입니다만. ”
“…아들 둘에게 미안합니다. ”
“어떤 점에서요? ”
“…… ”
“두 아들에게 어떤 부분이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
“…이식해줬는데도 계속해서 술을 못 끊고… ”
“자식들한테 나 좀 살려달라면서 간이식을 강요한 건 미안하지 않으신가보죠? ”
“가족이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습니까. ”
“자식은 당신의 부품도 아니고, 장기 보관고도 아니고, 하나의 살아있는… 자아를 가진 인간입니다. 자식들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걸 보니, 죄인은 최악의 아버지군요. ”
“그래도 제가 애들을 키워줬는데… ”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건 당연한겁니다. ”

그래도 키워줬는데, 라고 죄인이 변명하려고 하자 데메테르는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건 당연한 것’이라면서 죄인의 말을 막았다. 

“다른 재판관이 또 질문하겠지만, 제 관할이기도 하니 묻겠습니다. 죄인은 술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일이 꽤 있더군요. ”
“그게… 취해서 기억이 잘… ”
“술을 마신 본인이 기억을 못 한다고 해서 저지른 죄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

하데스는 지금까지 비슷한 대답을 하는 죄인을 여러 번 봐 왔고, 그럴때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 한다고 해서 당신이 저지른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면서 반박했다. 하나같이 그런 죄인들은 다 술 핑계를 대더군요, 라면서 한숨을 쉰 하데스는 죄인에게 ‘당신이 끼친 민폐만 해도 브리태니커 한 세트 분량은 족히 될겁니다.’라고 하면서 질문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죄인에게 질문을 한 법관은 와인색 머리카락을 가진, 30대 초반은 되어보이는 남성이었다. 

“죄인은 술을 끊을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선택하지 않고 계속해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하루라도 안 마시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면 사지가 사정없이 떨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으며, 가끔 환청이 들리기도 했어요… ”
“죄인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 중에는 전문가의 상담과 처방을 받으면서 술을 끊은 사람도 있습니다. ”
“…… ”
“자식에게 간을 두번씩이나 이식받았음에도 계속 술을 마셨을 정도면 죄인은 그냥 술을 끊을 의지가, 그리고 양심이 없었던겁니다. 간을 내어 준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했다면 처음 수술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서든 술을 끊었겠죠. ”
“아내분이 참고 산 게 기적이네요. ”

알콜과 니코틴, 그리고 마약은 한 번 중독되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정말 힘들다. 그리고 헤어나오기까지 많은 난관들이 있다. 한 대만 피우자, 한 잔만 마시자는 유혹도 유혹이지만 알콜이나 니코틴이 들어오지 않게 되면 금단증상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하지만 끊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건강이 안 좋다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끊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숱하게 봐온 디오니소스에게 있어서 죄인의 변명 아닌 변명은 그냥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죄인, 그 동안 술을 마시고 사고친 게 한두 건이 아니더군요. 단순히 토하고 바닥에 드러눕는 수준이 아니라 기물파손, 상해죄, 폭행죄에 성희롱까지… 고소당했을때도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으셨고요. ”
“…… ”
“이런 분들은 주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조절을 안 합니다. 그래서 술만 들어가면 사고를 치곤 하죠. ”
“저는 정말 술에 취해있어서 기억이 없습니다. ”

죄인은 지금까지 술을 먹고 다양한 사건들에 휘말렸었다. 눈을 떠보니 경찰서였던 적도 있었고, 어떨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죄인을 본 모양인지 형사 한 명이 ‘또 왔냐?’라면서 뒤통수를 때린 적도 있었다. 고소당하면 부모님이 합의해주거나, 결혼한 후로는 아내가 대신 허리를 숙이거나 했고 죄인 본인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일관하곤 했다. 어떨 때는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적용되기도 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복장 터질 노릇이었다. 

“이승 법정에서 그런 식으로 심신미약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보니 여기에 와서도 그런 게 통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곳의 심신미약 조건은 까다롭습니다. 저승 법정에서는 단순히 술에 취해서 블랙아웃이 왔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지는 않아요.”
“…… ”
“당신은 그냥 의지박약입니다. 간경화때문에 두 번이나 간 이식 수술을 했음에도 술을 끊지 않았고, 본인이 주사가 심각함을 알면서도 술을 조절하지 않았죠. 하데스 말마따나, 당신이 민폐 끼친 것만 모아도 백과사전 한 세트 분량은 나오겠군요. ”
“그건… 주변 사람들도 말 안 해줬고… ”
“그걸 말을 해 줘야 압니까? 술에서 깼을 때 경찰이 반겨준 그 상황에서조차 상황파악이 안 될 정도로 뇌가 술에 절어버리신건가요? ”
“…… ”

다른 법관들이 말 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디오니소스는 죄인이 변명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 변명을 한마디 한마디 쳐냈다. 

“자식들에게 간이식을 강요할 정도로 술이 좋았습니까? ”
“전 강요한 적 없습니다. ”
“아내랑 자식들이 반대하는데도 꾸역꾸역 이식해주겠다고 할 때까지 집이나 직장에 찾아가고, 패륜아 만들어버린다고 협박하고, 이번에 이식 안 해주면 죽는다면서 애비 없는 자식 될 거냐고 우기고, 이번에는 진짜 끊겠다고 거짓말 한 게 강요가 아니면 뭡니까? ”
“…… ”
“자식은 당신에게 간을 떼주기 위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
“디오니소스의 말에 동의합니다. 죄인이 술을 끊지 못할 걸 뻔히 알고 부인이 반대했음에도, 디오니소스가 말했던 행동들을 자식들에게 하면서 간이식을 강요했습니다. 입양아였던 딸도 적합 판정을 받았다면 딸에게도 강요했을테고, 그랬다면 죄인에게도 세 번째 기회가 있었겠죠. ”

데메테르가 디오니소스의 판결에 말을 얹으면서 ‘자식들을 간이식 받으려고 낳은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을때도, 죄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인, 큰아들이 수술 후유증때문에 죽은 건 알고 계십니까? ”
“…네? ”
“죄인의 큰아들은 죄인에게 간을 공여해준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 죽었고, 둘째아들 역시 후유증으로 고생중입니다. 죄인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까? ”
“…… ”
“큰아들의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면, 아마 몰랐겠죠. ”
“여기 와서 처음 듣습니다. ”

큰아들이 후유증으로 죽고 둘째가 고생한다는 얘기를 재판정에서 처음 들었다는 얘기에 디오니소스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죄인같은 사람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죄인은 주사가 심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때문에 민폐를 여러번 끼쳤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술을 조절하거나 끊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민폐를 끼쳤을때도 술 핑계를 대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회피하곤 했죠. 그리고 간경화때문에 두 번이나 간이식을 받았을때도 끝까지 술을 입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 간이식도 아들들이 자발적으로 해준 게 아니라 죄인의 협박과 강요 하에 이뤄졌죠. ”
“…… ”
“부인과도 별거중이 아니었고, 딸과는 그래도 연락이 됐을텐데도 자기 아들이 간을 떼 준 후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물어보지도 않더니 결국 큰아들 장례식도 가지 않았죠. 보나마나 또 술 마시고 계셨겠지만… 인간이 술을 발견한 것은 술을 핑계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만, 당신은 술을 그저 핑계거리 삼아서 마시고 있었을 뿐이예요. ”

디오니소스가 질문을 할 동안에도 제우스는 죄인에게 어떤 벌을 내려야 할 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런 제우스에게 디오니소스는 ‘자기 건강을 술이 박살냈다는 걸 알면서도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던 사람이니 그냥 원없이 술만 먹게 해 주시죠.’라면서 원없이 술만 마시게 할 것을 제안했고, 제우스는 이에 동의했다. 

대학생이 된 죄인은 신입생 환영회에 가게 됐다. 동기들과 안면도 틀 겸, 먹고 마실 겸 환영회에 갔던 그는 ‘이런 사람이 우리 과 동기라고?’소리가 절로 나올법한 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올데는 나오고 들어갈데는 들어간 콜라병 몸매에, 약간 붉은 조명을 받고 있음에도 하얗게 빛나는 새침한 얼굴을 본 선배들이 하나둘씩 그녀에게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무릎까지 오는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가렸지만 야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저, 술을 못 마시는데… ”
“한 방울도? ”
“네. 알콜 알러지가 있어서… ”
“그럼 내가 흑기사 해줄게. ”

눈도장도 찍고 점수를 딸 기회라고 생각한 그는 동기가 술게임에서 걸릴때마다 흑기사를 자처하면서 동기의 몫까지 잔을 비웠다. 소원으로 뭘 빌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연거푸 술을 마셨던 그는, 그 동기에게 안 좋은 의미로 눈도장을 찍었다. 다음날 잘 들어갔냐고 연락했을 때 그 동기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고, 영문을 몰랐던 그는 다른 동기를 통해 취해서 또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술에 거하게 취해서 옆에 앉아있던 동기의 가슴을 만지면서 ‘흑기사 해줬으니까 소원으로 따먹게 해달라’, ‘한번만 만지게 해달라’는 등 저속한 음담패설을 하다가 결국 동기한테는 뺨을 맞고, 1차만 마치고 집에 갈 예정이었던 선배들이 학과 사무실에 데려다줬다는 것이다. 뒤늦게 사과하려고 했지만, 그 동기는 역겹다면서 죄인과 마주치는것도 기피하더니 결국은 반수를 한다면서 나가버렸다고 한다. 

“에휴, 그래도 잘해보려고 한 건데… ”
“잘 보인다고 무리하다가 그러게 된 거지. ”
“그러게 옆에서 말릴 때 적당히 좀 마시지 그랬냐… ”

몇몇 친구들이 위로의 술자리를 가져주긴 했지만, 다음날은 그 친구들이 죄인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몇몇은 대놓고 ‘쟤도 술자리에 낄거면 나는 부르지 말아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항상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술에 거하게 취하고, 취할때마다 사고를 치는 죄인을 멀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도 있어서 술자리는 매일 끊이지 않았다. 정말 이게 벌일까? 술 마시는 게 행복한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뭐야, 이거 냄새가 왜 이래…? ’

어제까지만 해도 맛있게 마셨던 소주에서 먹으면 죽을 것 같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에 알콜 램프 뚜껑을 열다가 맡았던 냄새같기도 했다. 여기 소주 맛이 원래 이랬나? 하면서 한 잔 들이킬때마다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소독약 맛만 났다. 처음 한두잔은 마지못해 마셨지만, 이건 도저히 먹을만한 술이 아닌 것 같아 그는 컨디션이 안 좋다면서 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도저히 못먹겠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 술맛이 영 아니네. ”
“뭔 소리야, 분위기 깨지 말고 얼른 마셔. ”
“너때문에 분위기 싸해졌잖아, 인마. ”

흑기사나 흑장미를 요청해봤지만 소용 없었고, 되려 흑기사 요청을 받았다. 이번에는 안된다고 거절하면서 어찌어찌 술을 덜 마시긴 했지만, 한 모금 마실때마다 술이 이렇게 맛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죽을 것 같이 묵직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갔던 죄인은 다음날 또 동아리 회식자리에 불려갔고, 거기서도 술을 연거푸 마셨다. 

“야, 오늘은 진짜 안돼… 나 어제 술마신것도 아직 안 깼어… ”
“그러지 말고 나와, 너 없으면 무슨 재미냐? 다들 너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

오늘은 안될 것 같다고 거절했지만, 결국 다들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그는 또 술자리에 나갔다. 마시라고 해서 마시긴 하지만, 정말 술이 이렇게까지 쓸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죄인이 20대로 회춘한 건 맞지만 간은 회춘하지 않아서 술을 해독하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오늘은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
“어제도 잘 마셨으면서 무슨… 야, 빨리 와. 우리 닭발 시켰어. ”
“싫어, 나 아직 술 안 깼어… ”
“야야, 와서 물만 먹어 물만. ”

물만 먹으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갔던 그에게 친구가 또 술을 권하자, 그는 한번만 더 부르면 절교라고 한 다음 그대로 돌아서 집으로 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천장이 보였다. 팔에는 링거가 꽂혀있었고, 병실 안에는 죄인 혼자만 있었다. 

“깨어나셨군요. ”
“여기가 어딘가요? ”
“여기는 엘리시온 요양원입니다. ”
“엘리시온… 요양원…? ”

침대 옆에 달려있는 버튼을 누르자,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왔던 직원이 잠시 후 의사를 불러왔다. 의사는 정신을 차린 그에게 몸 상태는 어떤지 물어보면서, 여기는 엘리시온 요양원이라고 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여기로 실려왔고, 간경화가 심해서 당분간 입원해야 한다는 말에 죄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냐는 질문에 최근 연거푸 술을 마셨다고 하자, 의사는 간도 반쪽밖에 없으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죄인을 혼냈다. 

‘병실 상태가 왜 이래…? ’

병실은 전체적으로 퀴퀴한 곰팡내가 났다. 이런 곳이 진짜로 요양원인가? 리모델링같은 건 안 하나? 이런데가 인가가 났다고? 싶을 정도로 곰팡내 가득한 방 한 켠에는 나오는건지 의심되는 TV와 낡은 책장이 있었다. 책장에는 생전의, 그리고 죽어서도 술을 못 끊는 죄인을 저격하기라도 한 건지 ‘내 몸을 위한 간 설명서’, ‘간 건강 지침서’, ‘알콜중독 전문의의 에세이’라는 책이 꽂혀있었다. 

“환자분, 식사 드세요. ”

그는 점심으로 나온 식사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아니, 간경화로 입원했는데 환자한테 이런 걸 준다고? 환자식으로 나온 것은 저번주에 친구와 술자리에서 먹었던 소시지 야채볶음이었다. 적당히 짭짤한 소시지와 함께 아삭한 야채, 그리고 양념이 어우러진 맛은 한 입만 먹어도 바로 술이 생각나는 맛이었지만 간경화때문에 입원한 이상 술을 계속 마실 수는 없었다. 

“환자식인데… 이런게 나와도 되는거예요? ”
“다른 병실은 안 그런데, 특별히 환자분을 배려한거예요. ”

식사를 갈무리하러 온 직원은 ‘특별한 배려’라면서도 요양원에서 술은 금지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미치겠다, 대창구이… 기름 좔좔 흐르는데, 여기다가 소주 한 잔 하면 딱인데… ’

저녁으로 나온것은 통통한 대창구이와 돼지껍데기였다. 찍어먹을 쌈장과 콩가루도 곁들여져 있었다. 대창을 한 입 베어물면 기름이 좔좔 흐르면서 소주가 생각나고, 돼지껍데기를 콩가루에 찍어먹어도 소주가 생각났지만 그는 술을 마실 수 없어 물로 갈음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글쎄… 이번에는 꼭 끊는다니까. 니가 아빠 좀 도와줘라. 얌마, 이럴 때 자식된 도리 하는거 아니냐?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

저녁을 먹다 무심코 창 밖을 본 죄인의 눈에 비친 풍경은 둘째아들에게 간을 달라고 조르는 자신이었다. 디오니소스가 법정에서 지적했던대로 어깃장을 놓고, 협박에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결국 간 이식 수술을 받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죄인의 모습과,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후유증으로 사망한 큰아들과 후유증으로 고생중인 작은아들의 모습도 보였다. 내가 그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했던거지? 죄인은 그제서야 자기가 저지른 죄가 뭔지 깨달았다. 

“흠… 차도가 전혀 없네요. 그래도 지금은 병이 진전되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야 할 시기입니다. ”

정기 진료를 마치고 나오던 죄인은 순서를 기다리던 큰아들과 마주쳤다. 20대로 회춘한 죄인과 달리 큰아들은 건장한 30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후유증때문에 일찍 죽었지만 아내를 기다리느라 명계에서 지내게 됐고, 치료를 잘 받은 덕분에 곧 완쾌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20대임에도 거무죽죽한 얼굴에 누렇게 뜬 눈을 한 죄인과 달리, 큰아들은 혈색도 완연해보였고 수술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술은 죽어서도 못 끊는다는 게 맞는 말인가봐요. ”

큰아들은 거무죽죽해진 죄인을 보면서 차갑게 한 마디 했다. 술만 마시면 사고를 치고, 그러면서도 술을 못 끊고, 간경화 진단을 받은 후로는 아들들에게 간 이식을 강요하면서까지 술을 마실 정도였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두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술은 한 방울도 입에 안 대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가 술자리에 가게 되더라도 몇 잔 마시는게 고작이었던 큰아들은, 죽어서도 간경화때문에 거무죽죽한 아버지를 한심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그때는 미안했다. ”
“잘못 다 저질러놓고 죽은 다음에 사과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

죄인은 큰아들에게 사과했지만, 큰아들은 그런 죄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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