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하겠습니다. 피고는 본인의 과실로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것에 대한 벌을 받기 싫어 도망친 것으로 미루어볼 때 반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9999년동안 벌을 받아야 합니다. ”
“네? 아니, 재판장님! 저 정말로 그 친구한테 미안하다니까요? 정말이예요! ”
“당신이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미안했다면, 고소장이 두려워서 저승으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이승에서 제대로 벌을 받았을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세요, 당신은 그저 죄는 저질렀고, 벌은 받기 싫어서 도망친 도망자 1에 불과합니다. 이 판결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가중처벌로 1만년을 더 추가하겠습니다. ”
“여기 법정 아니예요? 내가 이의를 제기한다는데 왜 이의를 안 받아주는건데! ”
“이 법정에서 내려지는 판결에는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습니다. ”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어깃장을 놓는 죄인을 향해 검은 법복을 입은 남자가 차분하게 얘기했다. 그는 명계 법정의 대법관인 제우스로, 다른 법관들의 판결을 종합해 죄인들에게 최종 판결을 선언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자 폐정, 개정을 도맡는 사람이기도 했다.
“당신처럼 이승에서 죄를 짓고 벌을 받기 싫어서 저승으로 도망치는 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인들은 하나같이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그들이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죠. 당신이 왜 여기에 왔고, 왜 그런 변론을 했는지 돌이켜보세요. ”
죄인은 자살해서 아케론에 왔지만 스틱스에 등재된 케이스였고, 따라서 우선적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자살자이다보니 사정 청취를 하긴 했지만, 누구도 죄인의 사정에는 공감해주지 않았다. 이 곳이 자살자들이 거쳐가는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죄인이 친구의 행방을 물었을 때, 사정 청취관은 대답 대신 왜 그 사람을 찾는지를 되물었고, 아케론의 담당자는 대답 대신 ‘당신 손으로 죽였으면서, 이제와서 그 사람을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죄인이 스틱스에 등재된 이유가 죄인의 친구가 자살하는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죄인은 친구에게 부모님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서 병원비를 빌렸고, 당시 친구는 전세 사기때문에 빠듯한 상태였지만 죄인이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믿고 빌려줬던 것이다. 서로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금방 갚을 거라고 생각해서 빌려줬지만 약속된 날짜가 다가와도 죄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고, 차단한건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친구를 통해 죄인이 뭣도 모르고 코인판에 뛰어들었다가 되려 빚을 냈고, 돈을 빌린 이유 역시 부모님이 아파서가 아니라 잃은 돈을 어떻게든 되찾기 위한 자금이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친구는 배신감과 전세사기로 인한 충격때문에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
그럼 왜 죄인은 자살했는가, 단순히 친구에 대한 미안함때문이었다면 적어도 이 정도로 형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죄인이 자살한 이유는 친구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전말을 알게 된 친구의 유족들이 죄인에게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오랜 친구가 빚을 탕감하려고도 아니고, 어떻게든 잃은 돈을 되찾겠다고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하기 위해 돈을 빌렸다. 그리고 그 돈을 갚기 싫어서 전화고 문자고 연락은 일절 받지 않다가 결국 사람 하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건 유족들 입장에서 천불나는 일이었다. 내 아들과 가장 친했던 사람이 내 아들에게 사기를 쳤고, 죽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죄인이 아무리 울고 빌어도 돌아오는 것은 절대 합의는 없다는 말, 그리고 소금세례였다.
당연하게도, 죄인이 벌을 받게 된 이유 또한 그것이었다. 죄인이 자살을 택한 이유가 단순 빚때문도 아니고, 친구에게 미안해서도 아니고, 그저 소송에 져서 호적에 빨간 줄이 그이는 게 싫어서였으니까. 명계 재판정에서도 죄인은 친구에게 미안했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지만, 하데스와 헤르메스에 의해 보기 좋게 논파당하고 결국 9999년형을 받게 된 것이다.
“아들, 공부는 잘 돼 가? ”
“응. ”
“쉬엄쉬엄 해, 그러다 몸 축날라. ”
“알았어, 이 인강만 보고 잘게. ”
죄인은 9999년동안 고 3 수험생으로 사는 벌을 받게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S대 의대를 지망하는 고 3 수험생 말이다. 모의고사 성적도 올백에 올 1등급이라 이대로만 가면 S대 의대는 따놓은 당상이라 주변 친구들, 학교 선생님, 부모님도 다들 별 일 없으면 S대 의대는 바로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죄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시험을 친 당일에 느낌도 좋았고, 가채점을 해 본 결과가 올백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S대 의대에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 ”
하지만 성적표를 받아보니 올백이 아니라 한 문제가 틀렸다. 그것도 4점짜리도 아니고 2점짜리 문제가. 뭐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2점짜리 문제는 너무나도 쉬워서 평소에도 이걸 틀리는 사람이 있나? 라고 생각했던 건데 그걸 죄인이 틀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하면 턱걸이는 걸칠 수 있겠다 싶어서 S대 의대에 원서를 썼지만 예비 1번에 그쳤고, 다른 학교에는 아예 넣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은 재수를 해야 했다.
“모의고사에서는 올백이었는데, 대체 왜지? ”
죄인은 그 다음 해 수능에서도 딱 한 문제를 틀렸다. 분명 모의고사 성적은 좋았는데, 수능에서 또 다시 문제 하나를 틀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등급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S대 의대에 지망할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그 해 수능은 소위 말하는 물수능이었던 탓에 단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갈렸다. 죄인은 단 하나의 문제를 틀린 탓으로 외국어영역이 2등급이 되었고, 죄인은 결국 S대 의대에는 원서조차 쓰지 못 하고 또 재수를 해야 했다. 집에서 인강을 들으면서 공부했는데도 하나를 틀렸으니, 아예 빡세게 공부해서 공부 기강을 잡기로 한 죄인은 기숙학원에 등록했다.
그 학원은 비용도 꽤나 비쌌고, 규칙도 엄청나게 빡빡한 곳이라 감옥 같은 곳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고 정평이 난 곳이었다. 죄인이 부모님께 이번에는 합격하겠다면서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을 때, 부모님은 흔쾌히 학원비를 대 주셨다. 빡빡한 규칙에 적응하면서도 죄인은 이번에야말로 S대 의대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모의고사에서 올백을 차지하는 그를 학원에서도 수재라고 불렀다. 선생님들도 우리 학원에서 S대 의대로 진학하는 사람이 나올거라면서, 기대하는 눈치였다.
“음… 다른 의대에 원서를 쓴다면 가능성은 있겠는데... S대 의대는 좀 힘들 것 같네. ”
“...... ”
“모의고사때는 그렇게 잘 봤으면서 어쩌다가 한 문제를 틀렸어? ”
하지만 역시나, 죄인은 또 수능에서 한 문제를 틀려서 S대 의대에 합격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선생님도 다른 의대라면 모를까, S대 의대는 떨어질 수도 있는데 원서를 쓸 거냐고 물었지만 죄인은 거기가 아니면 안된다면서 선생님이 만류하는데도 S대 의대에 원서를 썼고, 결국 또 떨어져서 3수생이 됐다. 부모님도 그런 죄인에게 실망한 눈치였는지, 이번에도 S대 의대에 합격하지 못 하면 집에서 내쫓겠다는 통보를 했다.
왜 하필 S대 의대에만 목을 매는가 하니, 죄인의 집안이 의사 집안이었다. 친척들 중에는 의과대학에서 교수직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 병원을 하는 사람, 의사로 일하다가 최근에 은퇴한 사람도 있었고, 사촌들 중에는 벌써 인턴, 레지던트인 사람도 있었다. 치과 진료를 보는 친척들도 있어서 어릴 때 유치 발치나 충치 치료도 싸게 했던 기억이 있었다. 사촌들은 물론이고 삼촌, 고모, 이모, 부모님까지 전부 S대 의대 혹은 치대 출신이었던데다가 한번에 S대 붙은 케이스였고, 재수에 2수까지 하고도 S대 의대에 합격하지 못 했던 죄인은 거의 돌연변이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니가 approximately 뜻 모른다고 무시했던 정민이도 S대 의대 한번에 가서 내일모레 예과 2학년인데, 넌 뭐냐?”
“정현이도 이번에 본과 들어간다더라. ”
“너랑 동갑인 수진이는 벌써 본과 1학년 마치고 본과 2학년이야. ”
“얘 어디서 주워온 애 아니예요? 우리 집안 애 맞아요? ”
2수까지 했음에도 한 문제때문에 삐끗해서 S대 의대에 못 갔다는 얘기를 들은 친척들은 저마다 죄인에게 한소리 했다. 동년배인 친척들 중에는 벌써 본과인 사람도 있었고, 곧 본과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수능시험을 핑계로 죄인이 친척 모임에 안 가는 날은 그런 말들을 다 부모님이 감내해야 했고, 이를 참다참다 부모님 역시 3수까지만 지원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미 죄인은 재수를 한 시점에서 집안의 수치였으니까 말이다.
“짐 싸서 집에서 나가. ”
“엄마...! ”
“재수를 했을때부터 넌 이미 집안의 수치였어. 그런데 이번에 3수를 했음에도 또 떨어졌다고? 그것도 한 문제 차이로? ”
“가족들이 너 어떻게 됐냐고 물어볼때 우리 심정이 어떨지 생각은 해 봤어? 대체 언제까지 우리를 망신시키고 나서야 합격할거니? ”
“저도 최선을 다한거라고요! 근데도 계속 이러는걸 어떡해요...! ”
3수째에 S대 의대에 떨어지게 된 것도 결국 한 문제를 틀려서였다. 그리고 그 한 문제를 틀리게 된 이유는 계산을 잘못해서였다. 아니, 아니야, 내가 극한이나 수열같은 걸 까먹었을 리가 없는데. 아니, 로피탈의 정리를 대입하면 어지간한 미분 문제는 다 풀렸는데. 나중에 풀이 영상을 보니, 그 문제는 로피탈의 정리를 쓰면 안 되는 문제였다. 그렇게 4수생이 된 죄인은 집에서도 쫓겨나 작은 고시원에서 수능 준비를 하게 됐다. 죄인을 고시원에서 내쫓을때도 부모님은 생활비 정도는 지원해주겠지만, S대 의대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하여 죄인은 좁은 고시원 방에서 부모님이 주시는 생활비로 연명하면서 수능을 준비하게 됐다. 하지만 4수, 5수, 6수... 아무리 수능을 쳐도 지망하는 대학에는 닿을 수 없었다. 아예 공부를 못 했다면 애진작 S대 의대는 포기했겠지만, 모의고사에서는 올백이었는데 수능만 치면 항상 한 문제 차이로 S대 의대에 떨어졌다. 틀리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항상 한 문제가 문제였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가고 10수째가 되었을 때, 죄인은 부모님께 이번에도 낙방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병원은 동생에게 물려줄 예정이고, 너에게는 더 이상 연락도, 기대도,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병원을 동생한테 물려준다고요? ”
“너, 수능은 어떻게 됐냐? ”
“...... ”
“대답 못 하는 걸 보니 또 떨어졌구만... 그게 네가 병원을 물려받지 못 하는 이유다. ”
부모님은 운영하고 있는 병원을 죄인에게 물려줄 예정이었지만, 병원은 동생이 물려받게 됐다. 죄인이 전화해서 이유를 물었을때도 S대 의대에는 합격했는지를 먼저 물었던 부모님은, 아무 말도 못 하는 죄인에게 그게 네가 병원을 물려받지 못 하는 이유라고 했다. 동생에게 전화했을 때, 동생 역시 자기는 S대 의대 졸업하고 인턴인데 형은 그 동안 수능 공부 말고 뭘 했냐고 물었다. 심지어 2점짜리 문제 하나때문에 삐끗하는건 말도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형이, 정작 2점짜리 문제 하나때문에 S대 의대도 못 가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죄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너 아직도 수능 치냐? ”
“우리보고는 한 문제때문에 삐끗하면 S대 의대 들어갈 자격도 없다더니, 정작 본인은 한 문제때문에 삐끗해서 S대 의대 문턱도 못 밟네. 야, 니가 한 문제 틀렸다고 무시했던 정인이는 본과 졸업해서 옛저녁에 인턴 들어갔는데 넌 뭐냐? ”
“나보고는 2점짜리 문제 틀리는 건 사람도 아니라더니, 형은 왜 매번 그놈의 2점짜리 문제때문에 삐끗해서 S대 의대도 못 가? ”
“2점짜리는 일부러 틀리라고 해도 못 틀리겠다. 와… ”
친구들이나 친척들 역시 여전히 수능을 치는 그에게 한소리씩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S대 의대에 목매면서 고시원 달방에 처박혀 있을 동안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했고, 취업했고, 몇몇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었다. 의대에 가고 싶은 거면 다른 곳도 있는데, 꼭 S대 의대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죄인이 S대 의대에 간다고 10년가까이 수능에 몰두할 동안,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 나아가 있었다.
“아, 아니예요, 이건- ”
죄인이 평소처럼 수능시험을 치려고 할 때, 어디선가 진동 소리가 들렸다. 감독관이 진동 소리를 따라 와 보니, 진동 소리는 죄인의 책상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누군가 자기 자리에 악의적으로 넣어두고 간 핸드폰이 울렸고, 알람때문에 진동 소리가 들려서 그는 부정행위로 그 해 수능에 응시할 수 없게 됐다. 아무리 자기 핸드폰이 아니라고, 자기는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피력했지만 소용 없었다. 책상에서 핸드폰이 발견된 것도, 제출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것때문에 다음 해 수능도 응시하지 못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자, 부모님은 하다하다 부정행위까지 저지르는거냐면서 차단할테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겨우 수능에 응시할 수 있게 되자, 그는 다시 수능에 응시했다. 그리고 시험장에 이동중이었는데, 그 날은 이상하리만치 길이 막히고 있었다. 체감상 버스가 1분에 1mm는 나아갈까 말까 한 수준으로 길이 막혀있었고, 그는 다음 정류장에서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탔다. 하지만 길이 사고때문에 막히는거였고, 아무리 그래도 차가 인도로 갈 수는 없었던 탓에 결국 그는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 다음 해에는 이런 일이 있을까봐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왔음에도 사고때문에 시험장에 제 때 도착하지 못 해서 2년을 날린 그는, 아예 작정하고 시험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잔 덕에 시험장에 무사히 입장할 수는 있었지만, 또 다시 한 문제때문에 삐끗했다. 어떨 때는 전날 먹은 음식이 잘못돼서 설사때문에 시험을 망친 적도 있었고, 어떨 때는 복통때문에 시험에 집중하지 못했다. 또 어떨 때는 시험장의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서 듣기평가가 잘 들리지 않아 한 문제를 틀렸다.
건너건너 소식을 들어보니, 죄인이 S대 의대에 가기 위해 수능을 몇 번이고 칠 동안 동생은 전문의가 됐고 대학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동생이 어느정도 의사로써 제 몫을 할 수 있게 되면 병원을 물려줄 요량이었고, 다른 가족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의사로써 일하고 있었다. 오직 죄인만이 조금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 하는 목표를 향해 멈춰있을 뿐이었다.
“헤르메스, 궁금한 게 있는데. ”
“네, 아테나씨. ”
“굳이 9999년을 선고한 건 왜 그런거야? 9999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어? ”
죄인의 재판이 끝나고, 아테네는 헤르메스에게 죄인에게 9999년형을 선고한 이유가 있는 지 물었다. 죄인에게 9999년동안 닿을 수 없는 목표에 이루기 위해 손을 뻗게 하고, 정체된 삶을 살도록 한 것이 헤르메스였고, 하데스도 이에 동의했고, 제우스 역시 이를 수락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9999년 형이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죄인의 친구가 자살한 이유가 죄인이 사기를 쳐서였잖아요. 그 때, 친구에게 있어서는 그 돈이 전부였어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 있어서 죄인은 오랜 친구였고, 믿을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전부나 다름 없는 돈을 내줬다가 뒤통수를 맞게 된 거죠. ”
“그래서 판결할 때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그렇게 화를 냈던 거였군. ”
“그리고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정체되게 한 건 그것때문이예요. 전부를 내어준 친구를 배신했으니까, 전부를 걸었다가 무너지는 느낌을 당사자도 체감하게끔 하기 위해서요. ”
“...... ”
“그리고 9999말인데요. ”
헤르메스는 법복을 가볍게 털어 옷걸이에 걸었다.
“아테네씨, 어떤 물건이 10000원일때랑 9900원일때랑, 어느 쪽을 구매하실 것 같으세요? ”
“후자로 구매하지 않을까? 후자가 좀 더 저렴한 느낌이잖아. ”
“바로 그거예요. 9라는 건 1이 더 있으면 10이 되는, 어떻게 보면 부족한 수잖아요. 9999 역시 1만 더 있으면 10000이 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아주 조금 부족한 수고요. ”
“듣고 보니 그렇네. ”
“죄인이 친구에게서 앗아갔던 조금의 무게를, 그리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조금의 거리를 체감시켜주기 위해서 일부러 형량도 9999년으로 한 거예요. 그리고 죄인이 자살한 이유는 친구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유족으로부터 날아온 ‘소장 한 장’때문이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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