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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앙심의 대가

@myth_작가2026. 2. 22. 00:00

“저, 며칠 전에 연락드렸는데… ”
“어서오세요. ”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기 10분 전, 사무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체구나 얼굴, 머리 스타일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남자였지만 패션 센스만큼은 꽤나 준수해보이는 남자는, 등에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두꺼운 책을 들고 있었다. 복장이나 들고 있는 책으로 미루어보건대 대학생인 것 같아 보였고, 이맘때쯤 점심시간인 걸로 미뤄보자면 공강시간이라 급하게 온 듯 했다. 실제로도 의뢰인은 사무실 위치를 유선상으로 확인한 다음, 학교가 근처에 있으니 공강 시간에 가겠다고 했다. 

“의뢰인께서는 현재 학생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몇 학년이신가요? ”
“올해로 4학년입니다. ”
“그러시군요. 보통 학생이신 분들은 주말이나 강의가 없는 시간대에 오시던데, 공강시간에 급하게 오실 정도로 급하신 사안이라도 있나요? ”
“그게… 요즘들어 연애를 못 하고 있어서요. ”
“연애를요? ”

남자가 괴담수사대까지 찾아온 이유는 연애때문이었다. 단순히 연애를 못 한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라, 남자와 관련 있는 무언가가 연애를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그 무언가가 살아있는 사람이거나 어떤 요인인 게 아니라, 죽은 여자친구라는 것이다. 연애운이 하도 안 풀려서 점을 보러 갔다가 죽은 여자친구가 연애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괴담수사대로 오게 된 이유는 죽은 여자친구를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죽은 여자친구랑은 언제 사귄거야? ”
“사귄 건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였는데, 3학년 올라가면서 수능 준비때문에 헤어졌어요. 그리고 수능 치고 다시 사귀기로 했는데, 여자친구가 3학년 1학기에 자살을 했고요. ”
“자살이라… 사인이라던가, 뭐 집히는 거 없어? 여자친구를 괴롭히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거나. ”
“음… 글쎄요… 걔를 반에서 괴롭히고 그러는 사람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평소에 고민거리가 있다거나? ”
"그것도 잘… ”

남자가 여자친구의 사인에 대해 대답하자, 안쪽에서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파이로 역시 남자가 대답하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거기다가 사인이 뭔지 짐작가는 게 없냐는 말에 모르겠다고 일관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수능때문에 헤어졌다지만 그래도 1년 반을 사귄 여자친구였고, 1년 반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동안 서로 사귀면서 상대에 대해서는 자세히까진 아니더라도 교우관계나 고민거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대답하자마자 안쪽에서 삿된 것이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던 것도, 왜 웃은 건지 물었을 때 ‘잘못은 저질러놓고 벌은 받기 싫은가보지?’라고 했던 것도, 1년 반이나 사귄 여자친구가 죽었다는데도 모른다고 일관한 것도, 시선을 피하는 것도 뭔가 꺼림칙했던 파이로는 의뢰를 진행하기 전에 고키부리 사무실에 의뢰를 맡겼다. 그리고 고키부리 사무실을 통해 남자의 고등학교 동창과 약속을 잡은 파이로는 A구의 어느 카페로 갔다. 그 동창은 남자와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남자는 물론 남자의 여자친구도 잘 알고 있었다. 

“걔가 괴담수사대까지 의뢰를 하러 간 건가요? ”
“연애운이 안 풀린다고. ”
“걔는 여전히 뻔뻔하네요. 걔가 얼마를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의뢰를 안 들어주셨으면 해요. ”
“엉? 그게 무슨 말이야? 의뢰를 들어주지 않았으면 한다니? ”

여자친구가 3학년 1학기에 자살을 했고, 그 뒤로 남자에게 들러붙어서 연애를 방해하는 것 때문에 왔다는 얘기를 들은 동창은 파이로에게 괴담수사대에서 의뢰를 들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둘이 뭐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몰라도 산 사람은 사는 게 맞지 않느냐는 파이로에게 동창은 괴담수사대에는 원칙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금 얘기하게 될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아마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안 들어주실 수도 있다고 했다. 

“원칙에 위배된다고? ”
“걔 여자친구가 자살한 이유가 걔때문이예요. ”
“왜, 걔가 헤어진 걸로 앙심 품고 뭔 짓 했어? ”
“네. 걔랑 여자친구랑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쯤 헤어졌다고 했죠? ”
“그랬지. ”
“그때 여자쪽에서 헤어지자고 했는데 걔가 엄청 붙잡았거든요. ”

고등학교 2학년 말, 여자친구는 남자에게 서로 지망하는 대학교도 있고, 수능에 전념해야 할 학년이니까 당분간 헤어지자는 얘기를 꺼냈다. 아예 헤어지자는 것도 아니고, 수능 끝날때까지만 헤어지자는 얘기였는데도 남자는 납득하지 못 했다. 지금까지 사귀면서도 공부 잘 해오지 않았냐, 왜 헤어지려고 하는거냐는 남자에게 여자친구는 ‘너는 고 3 올라가는데도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이 상태로 계속 지내면 너나 나나 지망하는 대학에 둘 다 못 가’라고 얘기하면서 단호하게 남자를 찼다. 

“사실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로 여자친구쪽에서는 쭉 걔랑 이별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걔가 평소에도 섹드립 이런거 자꾸 치고, 여자친구가 기분나빠하면 사귀는 사이인데 뭐 어떠냐고 했대요. 여자친구 말로는 둘이 있을 때 분위기 잡고 갈데까지 가려고 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사무실에 찾아왔을때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그런 면이 있었다고? ”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반에서 범생이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공부에 뜻 없는 이미지였지… ”
“그럼 그 남자가 뭘 했길래 여자친구가 자살한거야? ”
“딥페이크 들어보셨죠? 걔가 자기 전 여자친구가 찬거에 앙심을 품고 지 여친으로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든거예요. 그것도 19금 딥페이크를요. ”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것에 앙심을 품고, 여자친구의 얼굴 사진을 이용해 AI로 야한 딥페이크를 만들었다. 성관계를 하는 영상이나 야한 사진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약간의 과장과 성희롱과 함께 올렸다. 워낙 교묘하게 만들어진 탓에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도 여자친구가 걸레라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이 거짓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던 건 파이로가 지금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창과 담임 선생님 뿐이었다. 

“걔는 여자친구가 자기떄문에 죽었을때도 완전 싸패새끼같았던 애예요. 아니다, 싸패라면 오히려 연기를 했으려나… ”
“뭘 어떻게 했길래? ”
“개가 자길 차지만 않았어도 이런 짓까진 안 했을 거 아니냐고 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다른 애들도 그게 딥페이크였다는 걸 알게 됐고, 왜 그런 짓까지 했는지 알게 된 다음에는 다들 걔를 멀리했어요. ”
“걔는 싸패인 게 아니라 그냥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놈이야. 진짜로 싸패였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여자친구가 죽어서 슬픈 척 연기를 했겠지… 그나저나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학교에서도 좌시할수만은 없었을 것 같은데. ”
“학교 반응이야 뭐, 똑같죠. 쉬쉬하려다가 여자친구 부모님이 경찰에 찔러서 언론 타니까 징계먹이고… 고3이라 강전은 못 가고 교내봉사로 퉁쳤어요. ”

남자와 여자친구가 다녔던 학교는 나름 명문 고등학교였다. 학교측에서는 차였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서 성희롱 하고, 자살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면 학교의 명예에 흠집이 날까봐 덮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를 한 덕에 일이 묻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학교측에서는 ‘그래도 우리가 명문 학교인데 퇴학당했다는 불명예가 나오면 안 된다’면서 교내 봉사 기간을 임의로 늘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누군가가 공론화해서 언론에 사건이 다 퍼진 후에야, 남자는 비로소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걸 누가 커뮤니티에 공론화해서 언론에 퍼진것도 있고, 학부모들이 일 터진거랑 전말을 알게 되고 나서 학교에 항의하니까 그제서야 걔를 퇴학시킨거죠. ”
“오히려 명문이면 그렇게 대처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싶다만…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

이후 파이로가 남자의 대학 동기를 만났다. 그리고 남자의 연애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대학 동기는 걔는 다 좋은데 연애만 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마가 낀다고 했다. 과끼리 소개팅을 하는 자리에 남자가 끼자 갑자기 파투가 난 적도 있었고, 어쩌다가 과끼리 소개팅이 성사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분위기가 하하호호 했던 것과 달리 남자 혼자 솔로엔딩이었다. 클럽이나 헌팅술집은 가려고만 하면 문을 닫거나, 어쩌다 문을 열었어도 물이 좋지 않았다. 

“걔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고백하려고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그 여자한테 고백해보기도 전에 차였어요. ”
“말로만 듣던 0고백 1차임? ”
“음… 0고백 1차임 당한 적도 있고, 고백하려던 찰나에 여자쪽에서 다른 남자랑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걔한테 다가오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종교 전도거나 목적이 좀 불순한 여자들 뿐이었고요. ”
“음… 혹시 과팅 나가기 전에 뭐 이상한 징후같은 건 없었어? ”
“아, 과팅이 성사된 날 상대쪽 여자가 꿈에 어떤 여자가 나왔다고 했어요. 그리고 걔가 쓰레기니까 지목하지 말라고 했다나… ”

소개팅 상대방의 꿈 속에까지 나와서 얘기할 정도면, 괴담수사대에서 어떻게든 해 주지 않으면 평생 독수공방으로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필사적으로 연애를 방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파이로는 학업때문에 헤어졌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고 딥페이크를 만들고, 성희롱까지 일삼는 놈이 연애를 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놈이 연애를 했다가 또 차이면, 그 때는 또 같은 짓을 할 지도 모르니까.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하면 죽일지도 모를 노릇이고 말이다. 

“이번 의뢰는 기각하자. ”
“네? ”
“전에 의뢰인이 여자친구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사무실에서 뭔가 비웃는듯한 소리를 듣지 않았어? 그 웃음소리의 주인이 전에 무당집에서 잡았던 삿된 것이었어. 내가 왜 웃었냐고 물었더니 ‘잘못은 저질러놓고 벌은 받기 싫은가보지?’라고 한 것도 있고, 여자친구의 사인을 모른다고 일관하는거나 그 놈이 말할 때 태도같은 것도 이상하게 신경쓰여서 고키부리 사무실에서 뒷조사를 했어. ”
“파이로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정도라면… 죽은 여자친구에 관해서 뭔가 나온 거라도 있나요? 그리고 그 무언가가 수사대의 원칙에 위배되는거고요? ”
“여자친구를 죽인 게 그 남자야. ”
“예? ”
“여자친구가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무렵에 헤어지자고 했다고 했잖아, 그거에 앙심을 품고 여자친구 사진으로 야한 딥페이크 만들어서 성희롱하고, 헛소문 내서 자살하게 만든 게 그 놈이라고. ”

여자친구가 죽게 된 이유, 그리고 여자친구가 죽은 후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긴 커녕 뻔뻔하게 ‘그러게 왜 헤어지자는 말을 해서 이런 짓까지 하게 만드냐’고 한 것, 학교측에서 쉬쉬하고 넘어가려고 했다가 피해자 부모측에서 경찰에 신고하고, 학생이 공론화를 해서 언론에 퍼지고,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자 그제서야 남자가 퇴학당했다는 것까지 알게 된 미기야에게 파이로는 우리가 의뢰를 들어주게 되면 다음에 또 엄한 피해자가 나올 지 모른다면서 이건 거절하는 게 맞다고 했다. 

“자기 죄를 오픈하기는 힘들 수도 있지. 하지만 적어도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 거라면 자기 죄를 직시하는 게 맞아. 그리고 우리가 의뢰를 들어줘서 여자친구를 성불시킨다 한 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혹시 알아? 우리가 의뢰를 들어줘서 여자친구를 떼어낸 후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또 차였다는 이유로 딥페이크 합성물 만들어서 성희롱할 지. 아니, 어쩌면 죽일지도 모르지. ”
“여자친구를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까지 말할 수는 없었겠죠, 본인도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도는 체감할테니… 하지만 파이로씨 말마따나,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이번 의뢰는 기각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

의뢰 건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사무실로 찾아온 의뢰인에게 미기야는 의뢰를 거절하겠다고 했다. 어째서인지 묻는 남자에게 파이로가 우리가 네 의뢰를 들어주면 나중에 또 엄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남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반문했고, 그런 남자에게 파이로는 여자친구가 찼다는 이유로 야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서 거짓 소문을 낸 것과 성희롱 한 것, 그리고 그것을 견디지 못 한 여자친구가 죽었을때도 ‘헤어지자고만 안 했어도 이런 짓 안 했다’고 한 것까지 전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 그건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 여자친구 좀… ”
“그럼 조건이 있어. ”
“조건이요? 뭔데요? 뭐든지 들어드릴테니까 제발 여자친구 좀… ”
“니가 죽인 여자친구한테 용서받고 오는 거. ”
“죽은 사람한테 용서를 받으라고요? 그런 걸 어떻게 해요! ”
“너는 니가 똥 싸질러놓고 똥 닦기는 싫은가봐? 아직도 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체감이 안 되는 모양인데, 수능 끝날때까지 그새를 못 참고 앙심 품어서 사람 하나 죽여놓고 너는 간단히 용서받길 바랐냐? 우리가 니 의뢰를 들어주게 되면 다음에 또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거라는 보장은 있고? 지금은 머리도 컸으니 그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

제발 어떻게 좀 해달라면서 애걸복걸하는 의뢰인을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손이 문 밖으로 잡아 끌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남자가 버텨봤지만, 말도 없이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손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서 질질 끌려나갔다. 남자를 끌어낸 다음, 검은 손은 독수공방만으로는 안 끝날텐데,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검은 손의 말대로, 남자는 여자친구가 들러붙어서 연애를 못 하게 된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평소처럼 남자가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갔을 때였다. 남자가 커피를 사 들고 강의실에 도착했을 무렵, 강의실에는 몇 명의 동기와 후배들이 앉아있었다. 저마다 얘기를 나누던 동기와 후배들은 들어서면서 인사를 건네는 그를 더러운 것을 보듯 하면서 수군거렸고, 그의 옆 자리에 앉아있던 동기는 평소와 다른 자리에 앉아있었다. 자리를 왜 이렇게 멀리 잡았냐는 말에 동기는 니가 그런 인간인 줄 몰랐다면서, 자기는 그와 같은 부류라고 오인받고 싶지 않으니까 어디가서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왜 그러는데? ”
“이 영상, 너 아냐? ”
“……! ”

동기가 그에게 보낸 영상은, 돌티비 영상이었다. 집에 가서 영상을 확인해보니, 돌티비에 남자의 만행이 실려있었다. 여자친구와 1년 반동안 연애를 했고, 이제 고3이니까 공부에 전념하고 싶다면서 잠시 헤어지자고 한 말에 앙심을 품고 딥페이크 합성을 한 것, 성희롱을 일삼은 것, 그리고 여자친구가 죽었을 때의 발언, 학교에서 초동 대처를 어떻게 했는지와 결국 퇴학당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전부 실려있었다. 당연하게도, 여자친구의 신상은 가려져 있었지만 사건의 가해자였던 남자의 신상과 얼굴은 전부 공개된 채였다. 

‘대체 누가 제보한거지? ’

동기들이나 후배들이 수군거린 것도, 그 영상을 접하고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나 후배들도 다 그를 손절해서 과에서도 졸지에 아웃사이더가 된 그를 볼 때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면서 수군거렸다. 몇몇 후배들은 ‘우리 사진도 이미 돌아다니는 거 아니냐’, ‘우리 톡방에 있는 사진도 다 지워야 하는 거 아니냐’, ‘저 선배가 SNS에서 나 팔로우하고 있던데, 당장 차단해야겠다’면서 수군거리기도 했다. 같은 과 사람들 뿐 아니라, 교양수업을 듣는 타과생들 중에도 돌티비를 본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인지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을때도 그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거지? ”
“또 이사가야 하나…? ”

집 앞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모르는 사람이 얼쩡거렸다. 그 탓에 한번 집을 이사했는데도, 어떻게 이사한 집 위치를 알아낸건지 또 사람들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누나는 매일 찾아오는 사람들때문에 불안하다면서 성화였고, 부모님 역시 사람들이 집 앞에 계란이나 쓰레기같은 걸 던지고 간다면서 성화였다. 집 담벼락에 낙서하던 사람이나 아버지의 차를 발로 차고 긁는 사람들을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파혼당했어. 알기나 해? 다 네 탓이야, 전부 다! 네가 그딴 짓만 안 했어도 이런 꼴 안 났어! ”

뿐만 아니라, 누나의 약혼자가 돌티비 영상을 어떻게 접한건지 누나에게 파혼을 고했다. 약혼자는 물론이고 약혼자의 부모들까지 그의 행적을 다 알게 됐고, 당숙 어르신이 어렵게 낳은 딸을 보내게 된 원인이 그 남자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를 알게 된 약혼자의 부모님은 이대로 결혼을 진행했다간 집안 평판에 문제가 생기거나, 가해자의 누나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 가족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간 사람들과 가족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결혼을 반대했다. 

약혼자는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가해자였다는 걸 알자, ‘내 동생은 S대에 진학하고, 당숙 어르신들처럼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 니 동생이 한 짓때문에 내 동생은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 하고 죽었고. 이대로 너랑 결혼하면 네 동생과도 가족이 되어야 하는데, 난 내 동생을 죽게 만든 사람이랑 하하호호 못 하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파혼 선언을 했다. 누나는 그런 남자에게 자기가 원한다면 집안 사람들이랑 아예 연을 끊고 살겠다고 했지만, 남자는 그런다고 죽은 여동생이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단호하게 파혼했다. 

‘이상하다, 분명 이 정도 스펙이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인데… ’

남자는 인턴십에서 탈락했다. 인턴십에 지원한 회사 인사팀에서는 돌티비 영상을 접한 후였고, 스펙은 나쁘지 않았지만 과거 행적이 발목을 잡아 미역국을 먹게 됐다. 여사원들은 돌티비에 나온 그 사람이 인턴십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얼굴도 막 합성해서 그렇고 그런 거 만드는 거 아냐?’, ‘저분 합격하면 우리 SNS 다 폐쇄해야 하나? 우리 사진 갖다가 합성하면 어떡해?’라고 수군거렸다. 면접을 보기 위해 다른 회사에 갔을때도 그는 면접 지원자들은 물론, 사원들의 수군거림을 감당해야했다. 

“너때문에 못 살겠어. 나, 이 집 나가는 대로 니 연락 다 차단할거니까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자. 부모님도 너때문에 옛저녁에 나가셨으니까 다시는 찾지 마. ”
“뭐? ”

자꾸 사람들이 집 앞에 얼쩡거리고, 쓰레기나 계란을 던져대는 통에 불안해하던 누나는 결국 집을 나갔다. 그건 부모님 역시 매한가지였고, 더 이상 이사다니는 것도 힘들다면서 아예 남자가 모르는 곳으로 가버린 다음 연락을 다 끊어버렸다. 텅 빈 집에서 혼자 살게 된 남자는 이사를 가려고 했지만 남자가 사는 집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집을 사려 들지 않았기때문에 큰 집에서 홀로 살아야 했다. 여전히 집 앞에는 사람들이 계란이나 쓰레기를 던지고 간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청소를 해야 했고, 청소를 하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더러운 것을 보는 듯 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 사람들은 우리 애 얼굴로도 그런 짓 하는 거 아니냐면서 일부러 남자가 사는 집을 멀리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알바를 하려고 해도 면접 자리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용직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티비의 파급력이 엄청나서 일용직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더러 있었지만, 먹고 살려면 그는 그 일이라도 꾸역꾸역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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