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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허영에 취해, 빚에 잠겨

@myth_작가2025. 8. 24. 00:00

“직장 선배때문에 찾아오게 됐습니다. ”

막 수업을 마치고 고키부리 사무실에 찾아온 모양인지, 이번에 찾아온 손님은 한 팔로 두꺼운 전공서적을 든 채였다. 그녀가 들고 있는 전공서적은 겉표지에 한글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영어뿐이었고, 마치 사전이나 고급 전집과도 같은 하드커버 재질이었다. 책의 무게가 꽤 나가는 모양인지, 의뢰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들고 있던 책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직장 선배요? 직장 내 괴롭힘이라도 있었나요? ”
“네. 저도 몇 번 당하긴 했는데, 저 말고 피해자도 꽤 있고 그것때문에 그만둔 사람도 있어요. ”
“어떤 식으로 괴롭히는데요? ”
“그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루에 한 번은 잡도리질을 꼭 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예요. 그리고 그 대상이 저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
“음…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으로 괴롭히는건가요? ”
“일부러 궂은 일을 시키거나, 원래 안 해도 되는 일을 시키거나, 일부러 일을 잘못 가르쳐주거나, 퇴근시간이 됐는데도 퇴근을 못 하게 하거나… 그거 말고는, 대부분 뒷담화예요. 성형한거다, 남자가 약점 잡혀서 사귀는거다, 한번 대주고 만나는거다… 뭐 그런 식으로요. ”

그녀는 학비를 벌 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녀가 고키부리 사무실에 찾아오게 된 이유는 그녀가 일하는 식당의 매니저 때문이었다. 어쩌다 한 번 사장님이 오실때는 잘 해줬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다른 직원들을 잡도리질하고, 뒷담화하는 게 기본이었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다면 매니저의 마수를 피해갈 수는 없었고, 보통 그녀의 잡도리질 대상이 되는 사람은 외모가 뛰어나거나,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때문에 몇 번, 같이 일하는 직원이 바뀐 적도 있었지만 사장님이 안 계실때만 잡도리질을 하기 때문에 사장님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럼 주로 괴롭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예쁘거나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들인가요? ”
“네. 자기도 아직 솔로인데 다른 사람들은 커플인게 샘나나봐요. 저도 커플이라는 이유로 괴롭힘당하고 있고요. ”
“그렇군요. 그 매니저가 직원들에게만 그런 식으로 대했나요? 자기보다 예쁘거나 커플인 손님이 왔을때도 뭔가 있었을 것 같은데… ”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예쁘거나 남자친구가 있는 직원에게는 작은 일이라도 꼬투리 잡아서 잡도리질하는 건 기본에, 성적인 뒷담화도 서슴치 않는 성격이라면 분명 불똥이 손님들에게도 튀었을거라고 생각한 도희는, 의뢰인에게 매니저가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의뢰인의 대답은 ‘자기보다 예쁜 손님에게는 불친절하게 대하고, 혼자 오는 잘생긴 남자 손님에게는 영국신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하는데다가 정말 찐으로 잘생긴 몇몇 손님들에게는 연락처를 직접 주기도 한다’였다.

“직원들도 다 알아서, 여자 손님한테 서빙할때는 매니저님 말고 다른 직원들이 가요. 안그랬으면 매니저때문에 식당 옛저녁에 망했을걸요? 왜, 저희 예전에는 코로나때문에 명부 받았었잖아요. ”
“그랬죠. ”
“아마 그때 일했으면, 분명 손님들 번호 몰래 알아가서 연락했다가 잘렸을걸요? 진짜 그정도로 남미새예요. 잡도리질도 남자 손님, 특히 잘생긴 손님 있을 때는 안 하거나 뒤에서 모르게 하거든요. ”

남미새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 매니저라는 사람은 남자를 엄청나게 밝히는 모양이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하기 위해 도희가 현수와 함께 식당에 방문했을 때, 매니저가 또 직원들을 잡도리질 하는 걸 보니 식당에 사장님은 안 계신 듯 했다. 두 사람이 음식을 주문했을때, 홀 서빙을 하던 직원이 음식을 가져가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테이블에서 주문했는지 확인한 매니저는 현수와 도희가 주문한 음식이라는 걸 확인하고 직원에게 화장실 청소를 떠밀다시피 하고 자기가 음식을 서빙했다. 도희의 앞에는 대충 음식을 내려놓은 매니저는, 현수에게 유독 사근사근하게 대하면서 냅킨에 휘갈겨 적은 연락처를 건넸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 있는 여자 손님들의 테이블에는 무표정하게, 탁 소리가 나도록 추가로 주문한 양파 피클을 내려놓고 갔다.

‘듣던 대로군. ’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도희는 언노운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의뢰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언노운은 사무실로 바로 와 줬다.

“무슨 일인데? ”
“의뢰가 들어왔는데, 의뢰 대상이 남미새거든요. ”
“남미새…? 그럼 남자를 밝힌다는거야? ”
“네. 아까 제가 직접 보고 왔습니다. ”
“그래서, 내가 뭘 해 주면 되는데? ”
“현수씨, 그 연락처 아직 있죠? ”
“네. ”

도희는 언노운에게 현수와 친한 척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두 사람이 친구이긴 하지만, 마치 애인으로 오해할 수 있는 사진을 찍자 현수에게는 그 사진을 프로필로 올려두고 매니저와 연락을 하면 된다고 했고, 언노운에게는 가끔 현수와 그 식당에 같이 가서 질투심을 유발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언노운씨는 현수씨의 여사친 역할을 해 주시면 돼요. 그러니까, 여사친인데 너무 친해서 거리낌없이 애인사이에 할 행동을 하는… 그런거죠. ”
“그거면 되겠어? ”
“네. 직접 가서 확인해봤는데, 의뢰 대상이 상당히 남자를 밝히거든요. 현수씨처럼 좀 반반하게 생긴 남자한테는 적극적으로 들이대기도 했고요. 저희는 그걸 이용할겁니다. 현수씨는 혹시나 의뢰 대상이 언노운씨에 대해 물어보면 연애 감정은 하나도 없고, 그냥 어릴때부터 친했던 소꿉친구라고만 하세요. ”
“그걸로 될까요? ”
“일단은요. 그 사람, 현수씨가 언노운씨랑 같이 붙어있는 걸 보면 상당히 질투할겁니다. ”

도희는 매니저가 좀 잘생긴 남자들에게는 자기 번호를 직접 줄 정도로 남자를 밝힌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수려한 외모의 현수에게도 적극적으로 번호를 줬으니, 현수가 연락하기만 하면 매니저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들이댈 것이다. 그리고 소꿉친구이자 외모가 빼어난 언노운을 연적으로 인식할 것이고, 질투심에 불을 지피고 나면 여울을 투입해 다음 작전을 개시할 것이다.

현수가 먼저 연락하자, 매니저는 거의 눈 깜빡할 시간에 칼답장을 보냈다. 이 남자가 마음이 있어서 연락했나? 라고 생각했던 매니저는 현수의 프로필 사진에 있는 언노운을 보고 살짝 경계했다. 지금까지 자기가 봐 왔던 여자들보다도 예뻐서, 미의 여신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에 비현실적일 정도로 균형잡힌 몸까지, 이 사람이 애인이라면 매니저 입장에서는 아무리 들이대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이 무슨 사이냐는 질문에 현수는 ‘어릴때부터 알고 지냈던 소꿉친구고, 연애 감정이 생길래도 생길수가 없는 사이’라면서 ‘이 친구, 눈 엄청 높아서 차은우의 외모+일론 머스크의 재력정도는 돼야 만나줄걸요?’라고 했다. 그리고 매니저는 안심했다. 제발 여자친구는 아니길 기도했는데, 기도를 들어줬다. 이 정도면 상대가 바오밥나무가 아닌 이상에야, 도끼로 계속 찍다 보면 언젠가는 넘어간다.

나무를 베기 위해서 도끼로 찍을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직 현수와 사귀는 데에 눈이 멀어있었던 매니저는 기술보다 힘으로 밀고 나가서 찍어버리기로 했고, 당연하게도 이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아직 썸도 아닌데 벌써부터 사귀는 단계라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지 과도하게 들이대면서 커플인 티를 내려고 하는 매니저에게 현수는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그럴때마다 매니저는 을이라도 된 것처럼 사과했다.

“여울씨, 현수씨랑 아는 사이야? ”
“제 친오빠인데요? ”
“그래? ”

현수가 몇 번 언노운과 함께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은 적도 있었다. 아무리 연애감정이 서로 없다고는 했지만, 친구끼리는 안 할법한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언노운을 보면서 그녀는 질투 반, 조바심 반이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같지 않게 예쁜 얼굴에 균형잡힌 몸까지 가지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저쪽에서 낚아채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알바생으로 들어온 여울마저 자기보다 예뻤던 탓에 그녀는 분풀이를 거의 여울에게 하다시피 했다. 손님으로 왔던 현수가 그녀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울이 현수의 여동생이라는 얘기를 듣고, 매니저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공략 대상의 여동생이라면, 잡도리질해서 마이너스 점수를 쌓아봐야 여러가지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던 매니저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여울만큼은 살뜰히 챙겨주기 시작했다.

“현수씨랑 같이 오는 되게 예쁜 여자분 말인데… ”
“아, 그 언니요? 오빠랑 되게 꼬꼬마일때부터 봤던 친구예요. 말 그대로 볼거 못볼거 다 본 사이라 둘이 뭐 이성으로 느끼고 그런건 절대 없어요. 그리고 그 언니, 눈이 엄청 높아서 차은우급 외모에 일론 머스크급 재력은 돼야 좀 거들떠볼까 말까일걸요? ”
“그래...? ”

여울이 핸드폰으로 몰래 녹음하는 줄도 모르고, 매니저는 여울과 친분을 쌓을 요량으로 다른 직원들의 험담을 마구 해댔다. 그리고 어느정도 친해졌다 싶을 때, 여울에게 현수의 연락처를 받을 수 없는지 물었다. 여울은 오빠한테 물어봐서 OK하면 주겠다고 했고, 다음날 오빠가 줘도 된다고 했다면서 현수의 명함을 하나 들고 와 매니저에게 건넸다. 여울이 건넨 명함에는 파리아 전략기획부 사원이라는 직위와 현수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파리아면 굴지의 대기업 아냐? 거기서 일할 정도면 완전 능력남이었잖아? ’

외모도 출중하지만 굴지의 대기업 파리아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현수에게 더 적극적으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외모에 능력까지 갖춘, 흔치 않은 남자니까 하늘이 두쪽나도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매니저는 아예 작정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수가 좋아하는 여자상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여울에게 현수가 좋아하는 여자상을 물었다.

“오빠요? 음… 오빠는 외모 그렇게 안 봐요. 자기보다 예쁜 여자 찾다간 영영 노총각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
“외모를 안 본다고? 그럼 뭘 보는데? ”
“그냥 그 사람 됨됨이랑…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투자하는가를 봐요. ”
“어떻게 투자하는지? ”

자신에게 투자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더 가꾸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더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취미에 더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건강과 자기관리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매니저는 ‘어떻게 투자하는지’의 그 어떻게를 있어보이게끔 하는 겉치장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외모는 자기가 더 뛰어나고, 능력도 되니까 부내 나고 집안이 빵빵한 여자만 만나면 된다는건가? 그렇게 생각한 매니저는 그날부터 화장품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요즘 매니저님 좀 이상해요. 갑자기 왜 화장품 얘기를 물어보는거지? ”
“글쎄요… ”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설마…? ”
“에이, 아니겠죠. 우리한테 욕먹은 것만 해도 장수하겠구만. ”
“그건 그래. 우리한테 욕먹은 것만 해도 100살은 거뜬할거야. ”

매니저는 큰 돈을 들여 번쩍번쩍한 명품옷을 입고 출근했다. 그리고 은근슬쩍 명품옷을 어필했지만, 점심시간에 빨리 먹고 자기 시간을 갖기 바쁜 직장인들이 그 식당 직원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리고 식당을 찾는 이유는 메뉴와 맛때문이지, 애초에 직원의 옷차림때문도 아니었고 말이다. 기껏 차려입고 왔는데 왜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거야? 부아가 치밀었던 매니저는 몇 번 현수와 함께 찾아왔던 언노운에게 남자들이 번호를 물어보거나 말을 걸던 것을 떠올리곤 자신이 못생겨서 그럴 거라고 단단히 오해했다. 현수와 붙어다니는 언노운은 빼어난 외모 탓에 길거리에서 파는 보세옷만 입고 다녀도 모델소리를 듣는데 명품을 차려입은 자신은 못생긴 얼굴 탓에 아무도 명품을 몰라본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성형수술을 받기로 했다.

처음에는 콧대가 좀 낮은 것 같으니 코성형을 하기로 했다. 거기서 만족했다면 좋았겠지만, 성형수술을 받고 나서 외모가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코성형에 만족하고 나니, 다음으로 평소에도 불만이었던 것들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코 다음은 쌍커풀이 없었던 눈, 그리고 하는 김에 지방 재배치, 그리고 또 하는 김에 얼굴이 너무 큰 것 같으니까 양악, 그리고 양악을 하면서 피부가 쳐졌으니까 안면거상술까지. 요즘 물만 먹는데도 살이 찌는 것 같고 온 몸에 군살들도 보기 싫으니 지방흡입, 그리고 평소에도 불만이었던 작은 가슴을 가슴수술로 키웠다. 마른 몸에 커다란 가슴이 부각됐던 언노운처럼 되기 위해, 그녀는 병원에서 제일 큰 보형물을 골랐다.

“요즘 매니저님 얼굴 좀 이상하지 않아요? ”
“그러게. 뭔가 휴가 내고 올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것 같은데? ”
“얼굴 뿐 아니라, 몸도 뭔가 바뀌었어요. ”
“뭐지? 설마 칼 댔나? ”

직원들은 물론이고 손님들도 매니저의 바뀐 얼굴을 알아보곤 했지만, 절대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성형수술을 해서 예뻐진 건 맞지만, 매니저의 얼굴은 성형한 티가 팍팍 나고 어딘가 이상했다. 매니저 본인은 성형으로 예뻐져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착각이었고 사실은 성괴라는 건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얘기인가, 싶은 얼굴이 됐기 때문이었다.

“형님들, 제가 돈을 확실히 받는 방법을 하나 알고 있습니다. ”
“엉? 진짜? ”
“어떻게 하면 되냐? ”
“이틀 후에 제가 그 식당에 손님으로 갈테니, 그 때 찾아오셔서 돈 갚으라고 하세요. 손님들이 다 들을 정도로 얘기하면 됩니다. 그 사람, 그렇게만 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창피당한 것 때문에 빨리 갚으려고 할 겁니다. ”

식당에서 매니저급으로 일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급여가 결코 그녀의 씀씀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성형수술 비용도 한두푼이 아닌데다가 거의 전신을 바꾸다시피 할 정도였으니 최소 1~2천은 썼을거고, 중간중간 명품을 구매하는 비용까지 합치면 그 동안 쓴 돈으로 중형차 두세대 값까지도 너끈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언노운을 제끼고 현수를 차지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매니저는 그런 면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리 없었고, 성형수술 비용 및 명품 구매 비용을 전부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월급이 나오는 족족 명품을 사느라 빚도 안 갚는 그녀에게 더 이상 은행이 돈을 빌려주지 않자, 그녀는 사채빚까지 끌어와서 성형수술을 하고 명품을 샀다.

사채업자들이 현수가 손님으로 있는 날 식당으로 찾아와서 돈 갚으라고 매니저를 압박한 것은 현수의 작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사채빚이 있다는 것때문에 창피를 당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빚부터 갚으려 들 거라고 예상해 사채업자들을 찾아가서 일부러 자신이 손님으로 가는 날 찾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보기 좋게 현수의 계략에 넘어가버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빚잔치중인 게 까발려져 창피한것도 있지만, 사채빚이 몇천만원이나 있다고 하면 어떤 남자라도 학을 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건 비단 현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한 매니저는 조급해졌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보려고 했지만, 부모님은 이미 닌자가 표창 날리듯 날아온 독촉장들을 보고 학을 뗐다. 은행빚까지는 그래도 자식이니까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사채빚까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부모님도 손을 놓아서 그녀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 불친절한 여자분 어디 가셨어요? 요 며칠새 안보이는 것 같던데. ”
“잘렸어요. ”
“잘렸다고요? ”

보통은 씀씀이를 줄이거나 투잡을 해서 빚을 갚겠지만, 그녀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바로 식당 돈을 횡령하기로 한 것이다. 마감 담당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용해 POS기를 조작하고, 그날그날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뒷주머니에 넣고 빚을 갚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팔린 것에 비해 뭔가 비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장이 CCTV를 조회함으로써 매니저의 횡령이 걸렸다.

“경력때문에 믿고 맡겼는데 알바생들을 이딴 식으로 대해? 가끔 식당 서비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올라오던 것도 다 너때문이었니? ”
“네? 그게 무슨... ”
“다 들었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뒷담화도 했더구나. ”

여울은 사장은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에게 그 동안 매니저가 했던 짓들을 전부 보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그 직원들 개개인에 대한 험담을, 사장에게는 그 동안 매니저가 직원을 막대하고 잡도리질한 것에 대한 증거들을 전부 보내자, 다른 직원들은 여울의 도움으로 궁변호사를 통해 매니저를 직장 내 괴롭힘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비스 문제, 횡령, 그리고 직원들이 그만두고 나갔던 원인이 매니저였다는 것을 알게 된 사장은 그 자리에서 매니저를 해고하고 경찰에 횡령범으로 신고했다. 뒷담화를 한 것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은 물론이고 명예훼손 혐의까지 인정되어서 막대한 위자료가 청구됐고, 횡령한 건에 대해서도 막대한 합의금을 물어야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집단고소라니? ”
“돈 갚으라고 할 때는 계속 잠수타다가 집단고소 한다고 하니까 이제서야 연락이 되네? 말 그대로야, 너 집단고소 할 거라고. ”
“돈 갚을테니까 조금만… ”
“아니, 우리 이제 너 못 기다려. 너 그리고 부모님 아프다는 핑계로 빌려가서 그 돈으로 다 명품 샀지? 이거 사기죄인 거 알아? 법정 이자 10원까지 싹 다 받아낼거니까 각오해. ”
“여보세요? 여보세요? 잠깐만- ”

성형할 돈을, 그리고 명품 살 돈을 사채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빌렸던 그녀는 친구들에게도 집단고소를 당했다. 단순히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잠수를 타서가 아니라, 돈을 빌릴 때 이야기했던 것과 다른 곳에 돈을 썼기 때문에 사기죄까지 추가됐다. 부모님, 그리고 가족 핑계를 대면서 한두푼씩 빌렸던 돈은 병원비가 아니라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썼기 때문이었다.

“여울이한테 그쪽이 어떤 사람인지 다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본 것도 있었고요. 죄송하지만 저는 내면이 예쁜 사람을 보는데, 당신은 내면이 정말 추하네요. ”
“아뇨, 그게, 저기… ”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

횡령을 들키기 전, 그녀는 현수와 단 둘이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다. 한껏 얼굴을 꾸미고, 명품으로 도배를 한 그녀는 현수를 만나서 사채빚이 있는 건 맞지만 열심히 일해서 갚고 있고, 현수에게는 절대 손 벌리지 않겠다면서 그녀의 마음을 고백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현수는 어떻게 전해들었는지 그녀의 만행을 전부 다 알고 있었고, 자신은 외모보다는 내면을 보기 때문에 내면이 추한 매니저와는 연인관계로 발전할 생각도 없다면서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 일을 빌미로 여울에게 해코지라도 한다면 가만 안 두겠다는 경고는 덤이었다. 그녀는 여울에게 현수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는지 물었지만, 여울은 현수는 한번 아니면 아닌 사람이라 자기도 어떻게 못 한다는 대답만 들었다.

“횡령했다가 걸렸다면서요? 알바생들 잡도리질도 꽤 했고… 그런 분을 어떻게 받아줍니까? 우리 식당에서도 횡령 저지르면 어쩌려고요. ”
“저 이제 절대로 그런 짓 안 해요. 진짜 맹세할게요. ”
“횡령은 둘째치고 우리 식당은 여자 알바생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도 잡도리질해서 다 나가게 하면 어쩌려고요? ”
“…… ”

그녀는 부랴부랴 이직하려고 했지만, 횡령을 비롯한 그녀의 만행이 전부 퍼져서 이직조차 불가능하게 됐다. 같은 동네 뿐 아니라 다른 동네 식당에도 어느새 그녀의 만행이 퍼져있었고, 카페는 물론 사무직 알바 자리에도 그녀의 만행이 다 퍼져있었다. 횡령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직원들만 골라서 잡도리질하고, 그것때문에 퇴사까지 하게 만든 사람을 고용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녀를 채용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물류센터에서 일일 알바라도 하면서 사채빚도 갚고, 근근이 먹고 살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내 얼굴이 왜 이래? ”

모든 수술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른다. 그건 성형수술도 예외는 아니었고, 외모에 불만족했던 그녀는 얼굴과 몸을 새로 만들다시피 한 탓에 부작용도 전신에서 터졌다. 병원에 가서 재수술을 받거나 보형물을 제거하면 되지만, 그녀는 그럴 돈도 없고 손을 빌릴 곳도 더 이상 없었다. 사채빚도 모자라서 횡령까지 저질렀다는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그녀를 내쫓았고, 친구들은 소송 이후로 아예 그녀를 차단해버려 더 이상 연락할 곳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이 진 빚이 얼마죠? ”
“엉? 그건 왜 물으시는데? ”
“제가 대신 갚아드리도록 하죠. ”

얼굴이 무너져서 물류센터 알바조차 가지 못 할 동안, 빚은 켜켜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끌고 가던 사채업자 앞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까마귀의 깃털로 치장한,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그녀의 빚이 얼마인지 묻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빚을 정말로 그 자리에서 다 지불했다. 

“감사합니다. ”
“고마워할 필요 없어, 이제 그 빚을 내가 받게 된 것 뿐이니까. ”
“네? ”
“네 빚을 내가 대신 갚아줬으니, 이제 채권이 나한테 넘어왔잖아. 그럼, 슬슬 빚을 징수받을 시간이네? 얘들아, 빚 받을 시간이야. ”
“!!”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손짓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까마귀 떼가 그녀를 마구 쪼기 시작했다. 까마귀 떼에게 마구 쪼이던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함께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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