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뒷조사를 좀 부탁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
오전 11시 무렵, 30대 중후반은 되어보이는 여자가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가 남편의 뒷조사를 의뢰하고 싶다고 했을 때 도희는 또 남편이 불륜이라도 저지르고 다니는건지 의심되는건가 했지만, 의뢰인이 남편의 뒷조사를 의뢰하러 온 이유는 그런 게 아니라 ‘이상하게 집에 돈이 안 모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던 도희는 이걸 받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내 의뢰를 받기로 했다.
“남편은 옛날부터 좀 귀가 얇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질이 있었어요. 그래서 TV, 혹은 네튜브에서 어디에 뭐가 좋다더라~ 하면 먹겠다면서 사곤 했죠. 물론 그것들은 안 먹고 버려서 제가 처리하거나, 상해서 처리하거나, 나눔하거나 해요. 사기치는 네튜버들에게 속아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사 온 적도 있었어요. ”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덜컥 구매하는건가요? ”
“네. 그냥 좋다고 하면 무조건 사는거예요. ”
의뢰인의 남편은 팔랑귀였다. TV나 네튜브 같은 데서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음식이나 건강식품이 있으면 일단 결제버튼에 제일 먼저 손이 가고, 그렇게 두세달치 건강식품을 사놓고 사흘이면 복용을 중단해서 버리거나, 나눠주거나, 의뢰인이 먹곤 했다. 그것때문에 몇 번이나 제발 사지 말라고도 해봤지만, 남편은 의뢰인이 화를 낼 때만 잠깐 깨갱할 뿐,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의뢰인의 화가 풀린 것 같으면 또 다시 좋다는 이유로 사제끼고, 본인은 먹지도 않는 패턴이 반복됐다. 남들이 좋다고만 하면 무조건 구매하기 때문에, 더러는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것때문에 경찰서에 피해자 신분으로 드나든 적도 있었다.
“피해자 신분으로요? ”
“건강식품 관련으로 사기를 당했거든요. ”
“그 성격이 건강식품 관련해서만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
“맞아요. 주변에서 뭐가 돈이 된다, 이런 얘기만 들으면 자기도 뛰어들어보겠다고 해요. 말로는 큰 돈 벌어서 우리도 일론 머스크랑 같이 화성 가자고 하는데, 현실은 말만 번드르르하고 늘 쪽박 차는거죠. ”
“음… ”
그런 남편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가상화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가상화폐가 좋다던데, 한번 해 볼까? 라고 묻는 남편에게 의뢰인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뛰어들었다가 날려먹은 돈이 얼마인 지 알아?’라면서 반대했다. 그 뒤로 일단은 잠잠해진 듯 했지만 그 뒤로 뭔가 수상한 행동들이 보였다.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는 집에서도 핸드폰만 주구장창 들여다보고 있어요. 아이가 뭐 하는지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하고… 제가 뭐 하냐고 물어보면 급하게 뭘 끄는 것 같았어요. ”
“…… ”
“가끔 가상화폐 얘기를 슬금슬금 꺼낼 때도 있었어요. 할 거면 지금이 기회다, 지금 투자하면 백배 천배 벌 수 있대, 이런 얘기들을요. 그럴때마다 제가 얘기하지 말라고 하면 며칠 잠잠하다가, 또 슬금슬금 눈치 보면서 얘기를 꺼내요. 오죽했으면 아이가 그런 얘기 하면 엄마 화내니까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어요. 할 거면 도장 찍고 하라고 크게 화낸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통하지 않았어요. 도장 찍고 하라고 화를 낸지 며칠도 안돼서 슬금슬금 또 얘기를 꺼내서, 옆에서 얘기를 듣던 아이가 아빠 진짜 왜 그러냐고 한 적도 있었죠. ”
“아이까지 뭐라고 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사안이네요. ”
“그때 아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아이가 남편보고 '옆집 누나가 키우는 타란튤라도 하면 안될 거랑 해도 되는 건 구별한다'면서, 아빠보다 옆집에서 키우는 타란튤라가 더 똑똑할거래요. 옆집 아가씨가 타란튤라를 키우고 있는데, 우리 아이도 가끔 그 집에서 키우는 타란튤라들을 구경하거든요. ”
아이까지 알 정도면 하루가 멀다 하고 얘기를 꺼냈겠군, 도희는 생각했다. 크게 한숨을 쉰 의뢰인은 고키부리 사무실에 의뢰를 맡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전에 아는 엄마가 은행에 갔다가, 남편을 은행에서 봤다고 했어요. ”
“남편분이요? ”
“네. 그 때는 농담조로 비상금 통장이라도 만들려고 그러나? 했는데, 알고 보니 대출을 받으러 온 거였더라고요. 저한테는 한마디 얘기도 안 하고… ”
처음에는 의뢰를 들어줘야 하나 고민했던 도희는, 의뢰인의 얘기를 듣고 의뢰를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몰래 대출을 받은 것도 그렇고, 계속 가상화폐 얘기를 꺼내면서 사람을 간 본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남편이 했던 행동들과 종합해보니 뭔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희는 현수를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 잠입시켰다. 현수는 남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면서 왜 의뢰인에게 말도 하지 않고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간 건지, 어디서 가상화폐에 대한 얘기를 접한건지 정보를 얻어내고자 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대신 남편이 얼마 전에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신입사원에게 가상화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신입사원이 얼마전에 가상화폐 거래했다가 꽤 큰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샀거든요. 남은 돈은 저축했다고 하고… 그 얘기를 듣고 이것저것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
“진짜 본격적으로 해 보려고 그랬나? ”
“그런가봐. 근데 그 신입사원은 오히려 말렸대. ”
신입사원은 ‘얼마 전에 가상화폐로 큰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핸드폰을 최신형으로 바꿨다는 얘기를 듣고 이것저것 물어보러 왔다’면서, 자신은 질문에 이것저것 대답을 하긴 했지만 가상화폐 시장이 불안정한 부분도 있고,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손실이라도 나면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권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남편의 태도에서 그냥 좋다는 얘기만 듣고 무작정 뛰어들려는 사람이라는 티가 나서, 신입사원은 오히려 남편을 말렸다는 것이다.
“현수씨도 아시겠지만, 이게 되게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잖아요. ”
“그렇죠. ”
“저는 큰 돈을 벌 타이밍을 잘 잡은거고, 그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 공부를 엄청 했어요. 그런데 대리님은 저랑 달리 그냥 좋다는 얘기만 듣고 뛰어들려는 것 같아보여서 오히려 말렸죠. 이 판은 섣불리 뛰어들면 쪽박 차기 십상이라고… ”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어요? ”
“그냥 그래? 하고 말았죠. ”
한편, 현동은 현수를 통해 남편이 활동하는 동호회를 알아낸 다음 동호회에 회원으로 잠입했다. 넉살 좋았던 현동은 동호회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운동신경도 좋다보니 종종 비결을 묻거나 운동을 가르쳐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호회 사람들과 친해진 현동이, 남편이 활동을 나오지 않는 날 슬쩍 남편이 가상화폐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었는지 묻자 동호회 사람들은 그런 적은 없었다고 했다.
“우리한테 딱히 뭐 물어보고 그런 건 없었어요. 여기는 운동만 하는 동호회라 그런가… ”
남편은 동호회 사람들에게는 가상화폐의 ㄱ자도 꺼내지 않았고, 동호회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데다가 최근에 지인이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빚을 지게 된 사람도 있었던 터라 가상화폐 거래에는 부정적이었다. 아마 그런 상황에서 동호회 사람들에게 얘기를 꺼냈다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게 뻔하니 아무 말도 안 한 거겠지.
‘여기서도 별 소득은 없었구만. ’
별 소득 없이 돌아왔던 현동은, 사무실 옆 계단에 앉아있는 의뢰인과 온통 까만 여자를 발견했다. 현동이 여기까지 어쩐 일인지 묻자, 까만 여자는 사무실 문이 잠겨있어서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이 사람이 볼일이 있어서 왔다는 말을 남기고 계단을 내려갔다. 의뢰인은 울었는지 젖어있는 눈망울로 현동을 보고 있었고, 놀란 현동은 문을 열고 의뢰인을 안으로 들였다.
“아직 저희도 조사중인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
“남편이… 남편이… ”
“남편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아이 적금에 손을 댔어요… ”
“아이 적금이요? ”
의뢰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아이를 임신했을때부터 미래를 대비해 들어 둔 적금이 있었다. 나중에 아이가 장성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가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오고 있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곧 잔고가 여덟자리를 찍을 것 같았다. 그 돈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돈이었고,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건드리지 말자고 약속했던 돈인데 그 돈에 의뢰인 몰래 남편이 손을 댔다는 것이다.
“그럼 남편분이 의뢰인분 모르게 적금을 해지했다는 말씀이신가요? ”
“네… 이번달에 돈이 안 빠져나가서 뱅킹앱으로 확인했는데 적금 계좌가 없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은행에 가서 확인했더니, 남편이 급한데 쓸 일이 있다면서 해지했다고 했어요. ”
“…… ”
“그 돈은 하늘이 두 쪽 나도 건드리지 말자고 서로 약속했던 돈이예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모아뒀던 돈이라고요. 아이가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에 보태기로 한 돈인데… 그걸 저한테 상의 한 마디 없이… ”
“정말 너무했네요… ”
현동을 통해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도희는 아웃사이더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제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 물었지만, 아웃사이더는 팀 반델의 ‘의뢰 외의 업무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철칙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면서 대신 제로와 동급인 해커를 한 명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곧 고키부리 사무실로 방문한 해커의 정체는 젊은 여자였다. 얼추 20대는 되어보이는 젊은 여자는, 폭풍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선이 가늘면서도 육감적인 몸에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언노운이라고 소개하면서 아웃사이더의 연락을 받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저는 무슨 일때문에 찾으셨어요? ”
“돈의 행방을 찾고 싶어서요. ”
“돈의 행방이요? ”
도희는 언노운에게 적금 이야기를 했다. 의뢰인이 아이를 가졌을때부터 들어왔던 적금이었고, 아이의 미래를 위한 돈이었다. 그리고 그 돈을 남편이 말도 없이 덜컥 해지해버렸다. 그러자 언노운은 남편의 정보만 있으면 돈의 행방은 금방 찾는다면서 남편에 대한 정보를 물었고, 의뢰인에게 정보를 캐내기 전까지 당분간 적금을 해지한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며칠 후 다시 사무실을 찾은 언노운은 적금의 행방은 물론 은행에 갔던 이유, 그리고 생활비가 줄었던 이유까지 알아냈다. 가상화폐 거래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돈을 번 투자의 달인으로 위장하고 접근한 그녀에게 남편은 역시나 이것저것 물었고, 그 과정에서 적금을 해지한 이유는 물론이고 대출을 받은 이유, 생활비의 비밀까지 술술 불었다. 그것을 토대로 고키부리 사무실에서도 추가적으로 증거를 수집했고, 어느정도 증거가 모였을 때 도희는 의뢰인을 불렀다.
“일단 적금의 행방부터 얘기해줄게요. 적금은 전부 해지해서 가상화폐 거래에 사용했어요. ”
“…… ”
“원래 남편이 팔랑귀 기질이 있어서 좋다고 하면 무조건 사고 본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손해도 꽤 봤죠? 불나방처럼 좋다고 뛰어든 사람들치고 결말이 좋은 사람을 별로 보지 못 했어요. ”
“말을 안 해주니, 저는 모르죠. ”
“손해가 났으니까 말을 안 한 거예요. 반대하는데도 꾸역꾸역 강행했다가 결국 손해가 났다는 걸 걸리면 이혼당할 게 뻔하니까. ”
“…… ”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왔던건 그 손해를 메꾸기 위해서였어요. 어떻게든 손해를 메꾸면 안 들킬거라고 생각한거죠. ”
남편이 말도 없이 적금을 해약한 이유는 의뢰인이 그렇게 반대했던 가상화폐 거래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이유는 의뢰인의 반대에도 꾸역꾸역 가상화폐를 샀다가 손해를 봤기 때문이었고, 의뢰인에게 들키기 전에 손해를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 대출을 받았던 것이다.
“혹시 남편이 회사 사정때문에 월급이 줄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
“그랬죠. 그것때문에 생활비가 삭감돼서 아이 학원 하나도 그만뒀어요. ”
“그것도 가상화폐에 투자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거짓말 한 거예요. 갑자기 생활비를 안 준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거고, 가상화폐에 투자한다고 하면 반대할 게 뻔하니까 월급이 삭감됐다고 거짓말을 한 거죠. ”
“그럼 남은 돈은… ”
“전부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데 쓰였어요. ”
“…… ”
언노운의 이야기를 들은 의뢰인은 충격이 컸는지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기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저금하기로 서로 약속한 돈까지 빼돌리고, 월급이 삭감됐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가상화폐에 빠지고, 손해를 메꾸려고 상의 한 마디 없이 대출을 받았다. 차라리 손해를 봤다고 도게자라도 박았더라면 이 정도로 배신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놈의 가상화폐를 산답시고 남편이 생활비를 삭감해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둬야 할 때도, 아이에게 사과했던 건 의뢰인이었다. 아이는 ‘오히려 나 피아노 지루해서 싫었어.’라면서 그런 의뢰인을 위로했다.
“아이도 있으니 결정하기 쉽지 않겠지만, 저는 이혼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해요. ”
“…… ”
“그런 아빠는 아이에게 독이예요. 지금은 몰래 대출받고, 몰래 적금을 해약하는 선에서 끝났지만 나중에는 당신 모르게 사망보험을 잔뜩 들어놓고 당신을 죽일 수도 있고, 아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이나 당신 아이는 분명 피해를 보게 될 거예요. 물론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당신 남편처럼 좋다는 말만 듣고 섣불리 뛰어들지는 않았을거예요. 그리고 무리해서 자금을 끌어가면서까지 하지도 않았을거고요. ”
“저도 남의 가정사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이런 말씀까지는 잘 안 드리는데, 언노운씨 말씀에 동의합니다. 의뢰인분, 아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으시다면 남편분과는 이혼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적금은 다시 모을 수 있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적금을 모아봐야 또 남편이 해지할 게 뻔해요. ”
남편이 가상화폐에 돈을 투자했고, 그것때문에 손해를 본 것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자기 몰래 기어이 투자를 했고, 절대 손대지 말자고 했던 적금까지 가상화폐때문에 몰래 깨버렸고, 심지어 제발 그 팔랑귀 성격좀 고치고 아무거나 좋다는 얘기만 듣고 뛰어들지 말자고 약속했던것까지 깨져버렸다. 이대로 살다가는 행복한 삶과 거리가 지구와 달의 거리만큼은 멀어지겠지, 의뢰인은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자 도희는 궁변호사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면서 소송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이니 잘 해줄거라는 말을 건넸고, 언노운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혼하자. ”
아이가 캠프에 간다고 하루 집을 비운 날, 의뢰인은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혼이라니? 왜? ”
“몰라서 물어? ”
“아니, 왜? 우리 잘 살아왔는데 왜 갑자기? ”
“갑자기? 이게 갑자기라고 생각해? 뱃속에 우리 우진이가 자랄때부터 얘기했지, 아무거나 좋다고 뛰어드는 성격 좀 고치라고. 그리고 우진이 대학 등록금에 보탤 적금은 절대 깨지 말자고도 약속했지? 근데 그 약속들을 당신이 다 깨버렸잖아. 지금까지 생활비가 적었던 것도 월급이 삭감돼서가 아니라 나 몰래 가상화폐에 투자하느라 그랬던거지? 당신, 아이 미래를 위해서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깨지 말자던 적금까지 나 모르게 깨가면서… 그렇게까지 가상화폐가 하고 싶었어? ”
“여, 여보… 그, 그건… 마, 많이 벌어서 주려고 했는데… ”
“좋다고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뛰어드는 사람이 무슨 돈을 어떻게 벌어? 내가 지금 돈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당신,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안 했잖아. 매번 일 버려놓고 뒷수습은 나나 시댁에서 다 했지? 당신이 가상화폐에 퍼붓는다고 생활비 삭감해서 우진이 피아노 학원 그만 뒀을때도 당신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잖아. 오히려 그 돈으로 나 몰래 가상화폐에 들이붓고 신나했겠지, 아냐? ”
“…… ”
“당신같은 아빠는 아이에게 독이야. 오히려 없는 게 나아. ”
남편은 울면서 빌었지만, 의뢰인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도 유분수지. 아니, 차라리 밑 빠진 독은 뭘로 막으면 물은 채워지지. 밑 빠진 가계부에서 야금야금 돈이 빠져나가는데, 심지어 막을 생각도 없고 몰래 밑을 뚫어서 그 돈을 빼 가던 사람이 자기 남편이었다니. 거기다가 남의 돈까지 끌어다가 얼레벌레 손해를 메꾸려고 했다니.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았을때도 그녀는 속으로 결혼하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었어.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해놓고 며칠 못 가서 또 다시 반복했어. 지금까지는 우진이가 그래도 부모님 다 계신 가정에서 자랐으면 해서 참았는데, 난 더 이상 당신 못 믿어. "
의뢰인이 시댁에 연락해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얘기하자, 깜짝 놀란 시부모님이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한달음에 달려온 시부모님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자 시부모님은 의뢰인에게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남편을 데리고 나갔다.
“여보, 미안해… 진짜 이번에는 안 그럴게, 나 한번만 다시 받아줘… 나 집에서도 쫓겨나서 갈 데가 없어. ”
“여기가 어디라고 자네가 찾아오는가? ”
시부모님은 지금까지 남편이 사고친 걸 뒷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았고, 결혼해서도 그놈의 팔랑귀때문에 개고생을 시켜놓고 급기야는 가상화폐인지 뭔지에 투자한다고 손주 적금까지 말아먹는 아들놈은 원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누이 역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조카 미래까지 도박에 꼴아박는 놈이 무슨 아빠냐, 이혼하길 잘 한거라고 했다. 물론 의뢰인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부모님 역시 ‘네가 이혼 안 한다면 우리가 이혼하라고 설득했을 것’이라면서, 그런 아빠라면 애한테도 독이라고 했다.
집으로 끌려간 남편은 시아버지한테 호되게 혼나고, 집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다시 의뢰인을 찾아갔지만 거기서도 내쫓겼다. 그 뒤로 이혼소송을 진행했지만 남편은 재산분할은 커녕 양육권도 받을 수 없었다. 집안 살림에 보태기는 커녕 야금야금 가상화폐에 꼴아박은데다가, 집에서 하루종일 핸드폰만 보느라 아이랑은 놀아주지도 않아서 아이랑 유대감이랄 게 없었던 탓이었다. 오히려 남편은 의뢰인에게 위자료와 양육비를 지불해야 했고, 아이는 엄마를 선택했다.
“우진엄마, 그 얘기 들었어요? ”
“무슨 얘기요? ”
“글쎄, 우진이 아빠 말이야… 깡통도 못 찰 정도로 알거지가 됐대. ”
돈을 버는 족족 가상화폐에 들이부어서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던 남편은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번 이익으로 위자료와 양육비를 한 번에 때우려고 했지만, 오히려 손실을 봤다. 손실을 한두푼 본 것도 아니고, -99.9%를 달성했다. 지금까지 가상화폐에 부은 돈이 천만원은 족히 넘었는데, 그 천만원이 순식간에 백원이 됐다.
뿐만 아니라, 동호회 내에도 이혼사유가 퍼져서 사람들이 남편을 멀리하려는 눈치가 보였다. 처음에는 좀 멀리하는 정도였지만, 남편이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통에 탈퇴당했다. 회사에도 이혼 사유가 퍼져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통에, 견딜 수 없어서 그만뒀다. 가족들은 물론 이혼사유가 뭔지 알게 된 친구들 역시 그를 손절해서 손 벌릴 곳이 없었던 그는 마지막으로 한 탕 하기 위해 사채를 끌어썼고, 그 돈도 손실 -99.9%를 기록하고 말았다.
남편이 가상화폐에 투자할 동안 빚은 몸집을 미친듯이 불렸고, 백수였던 남편은 빚을 갚을 여력도 안 됐기에 그대로 찰 깡통조차 없는 알거지가 됐고, 마지막으로 남편을 봤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깍두기 형님들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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