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전화
구독자 ‘부릅뜨니숲이있어‘님께서 보내주신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미스테리어스 블로그 구독자입니다. 오늘은 집에 있는 낡은 전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희 집에는 낡은 휴대폰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사용하셨다는 그 휴대폰은, 요즘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달리 버튼이 달려있는 전화기였고, 배터리는 아예 방전된데다가 유심도 없어서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전화기로 가끔 전화가 걸려오곤 합니다. 저는 죽은 전화기에서 전화가 온다는 게 무서워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한번도 받아본 적 없지만, 부모님께서는 전화가 울릴때마다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로 걸려온 전화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70대까지는 정정하셨었는데, 겨울에 새벽 운동을 나갔다가 쓰러지신 후로 뇌 혈관에 문제가 생겨 거동에 문제가 생겼고, 그때문에 오랫동안 와병 생활을 하셨습니다. 꽤 오랫동안 요양원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전화로 어머니에게 그 동안 고마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다음날, 삼촌을 통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장례식장에 가느라 학교를 쉬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일 기력도 없고, 한두마디 겨우 하셨던 할머니께서 정정하셨을 때의 목소리로 그 동안 고마웠다고 하는 걸 듣고, 어머니는 내가 꿈을 꾸는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걸려온 전화는 오래 전 아버지와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아버지의 고향 친구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연락을 끊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 직접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다른 친구들 통해서 알음알음 그 친구의 근황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아버지께 전화로 그 때는 미안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전에 할머니의 전화 건이 신경쓰여서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곧 그 친구가 아버지와 통화한 다음날 빚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 번째로 걸려온 전화는 저의 친어머니였습니다. 저는 입양아로, 친어머니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 저를 낳았습니다. 저를 키울 여력이 안됐던 친어머니는 아이를 입양보내고자 했지만 당시에는 교회에 베이비박스같은 것도 없었고, 결국 입양 기관에 문의하거나 수소문하는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를 입양해 줄 양부모를 찾던 친어머니의 부모님은, 지금의 부모님이 아이를 입양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불임이라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지금의 부모님은, 아이를 입양하겠느냐는 친어머니 부모님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세 번째 전화를 받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전화를 통해서 얼굴도 모르는 친어머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친어머니는 저에게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입양 보내고 나서도 많이 그리워했다, 바르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친어머니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네 번째로 걸려온 전화는 초등학생때 저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는 밝고, 쾌활한 성격에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교통사고로 인해 뇌사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차도에 뛰어든 어린아이를 구하려다가 그렇게 된 걸 보면, 불의를 보면 못 참는 그 친구 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전화로 나는 먼저 가지만 너는 천천히 와라, 내 생일 까먹지 말고 간식거리나 좀 들고 와 달라는 말을 남겼고, 저와 통화한 다음날 연명치료를 중단했습니다. 이후 친구는 생전에 결정했던대로 장기기증을 통해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의 생일이 되면 그 친구가 좋아했던 간식들을 사 들고 납골당에 가곤 합니다.
최근에 걸려온 전화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직장 상사였습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을 때, 그 분은 저의 직장 상사라면서, 혹시 저와 통화를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출장중이라고 하자, 그 상사는 마지막 인사를 직접 못 하게 되어서 아쉽다면서, 지금처럼 열심히만 일해주면 될 거다, 특출난 것은 없어보여도 성실한 자세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잘 될거라고 생각한다, 성실함을 무기삼으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날 그 상사분께서는 급성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출장지에서 바로 빈소로 갔습니다. 엄하지만 내 사람은 확실하게 챙기는 분이셨고, 저도 존경하는 상사였기에 그 분의 연락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전화기가 울릴 때가 있습니다. 이미 배터리가 빙전된데다가 충전할 수단도, 유심도 없는 전화기가 어떻게 울리는건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화가 언제까지 울릴지도 미스테리입니다. 과연 이 전화기가 마지막으로 전해줄 고인의 인사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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