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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23. 낯선 마을

@myth_작가2026. 5. 30. 21:58

“여긴 어디지…? ”

정신을 잃었던 그가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한적하다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시골 마을 입구였다. 마을의 입구 근처에 놓인 비석에는 망우리라는 세 글자가 쓰여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해도 저물었고, 주변에는 늑대 울음소리와 부엉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달리 갈 곳도 없고 하니 일단 하룻밤 잠잘곳이라도 청하고자 그는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 오면 안 되는 사람이 왔구만. ”

망우리 석 자가 쓰인 비석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선 그는 잘 만한 곳이 있나 둘러보며 밭길을 지나가다 7~80대는 된 듯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대뜸 그를 보자마자 오면 안 되는 사람이 왔다는 말을 던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 입구에 있었습니다. 해도 떨어졌고 하니, 내일 아침까지 잘 곳이라도 찾을까 해서 마을로 오게 됐고요.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내일 아침까지만이라도 하룻밤 재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쯧쯧… 황망한 곳에서 또 길을 잃었구먼… 따라오게. ”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 입구였다는 말에, 노인은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으라면서 가마솥에 남은 밥을 꺼내 건네곤, 마을에서 지내면서 지켜야 할 수칙이라면서 손때가 묻은 종이 한 장을 건네면서 최대한 빨리, 늦어도 일주일 내에는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자네는 어쩌다가 예까지 온 겐가? ”
“교통사고를 당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
“이 곳을 나가려면 자네가 누구였는지, 왜 여기에 오게 된 것인지 떠올려야 하네. 이 마을은 자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자네가 누구인가가 지도가 되고 등불이 되는 마을이야. ”

어르신은 그에게 일주일동안 이 곳에서 지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내야 한다고 했다. 그것만이 이 곳을 나가는 길이고, 그것만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어르신, 그래도 일주일이나 지내게 해 주시는데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서요. 혹시나 거들 일이 있으면 저도 일손을 보태겠습니다. ”
“그런가? 안그래도 오늘 고추밭에 갈 생각이었으니, 오늘은 고추농사를 좀 거들어주게.”
“알겠습니다. ”
“명심하게. 나랑 같이 있을 동안은 괜찮지만, 다른 어르신들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하면 안 돼. 그리고 새참은 반드시 내가 건네주는 음식만 먹게. ”

일주일이나 먹을것과 지낼 곳을 내어 주는 호의를 베푼 어르신에게 작은 은혜라도 갚고자, 그는 작은 일손이나마 보탤 것을 자청했다. 그런 그를 데리고 고추밭으로 간 노인은 다른 어르신들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하면 안 되고, 새참도 자신이 주는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고추 농사를 지었다. 

“노씨네, 못 보던 총각이 하나 왔구만? 어디서 온겨? ”
“우리 손주여. 멀리서 잠깐 일손을 좀 거들어주겠다고 왔어. ”
“그려? 아따, 신수가 훤하게 생겼구만. 자네, 올해 몇 살인가? ”
“…… ”
“아따, 물어보는데 대답을 안 한다냐. 야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가… 영어로 해야 되야? ”
“우리 손주가 날때부터 소리는 잘 듣는데 말을 못해. ”
“아, 그려? ”

중간에 노인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었지만, 그는 어르신이 얘기했던 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재차 묻는 노인에게 어르신은 손주가 소리는 잘 듣는데 말은 못 한다고 둘러댔고, 노인은 이내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그 날 점심 새참으로는 TV에서나 보던 푸짐한 음식들이 나왔지만, 그는 어르신이 건넨 찐 감자에 소금밖에 먹을 수 없었다. 

“저녁에 마을 뒷산에 있는 서낭당에 가보자고. 거기에 무당이 나와있어야 자네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어. ”

어르신과 함께 마을 뒷산에 있는 서낭당을 오르자, 바람에 흰 천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무는 죽은건지, 잎들을 다 뗀 건지 초목이 우거진 계절에 홀로 겨울나무처럼 앙상해보였고, 누군가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라도 올리는 자리인건지 나무 밑에 소반과 물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오늘은 없구만… 그래도 아직 첫째날이니까, 너무 조바심 내지는 말게. ”

무당이 보이지 않아 낙심한 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어르신은 아직 첫째날이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라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대한 기억은 좀 떠올랐는가? ”
“급하게 어딘가로 가다가 차에 치인 기억만 있습니다. ”
“그럼 교통사고를 당한겐가? 어쩌다가? ”
“면접을 보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무엇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
“그래, 그래, 거기서 좀 더 기억을 떠올리면 무당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몰라. ”

조금이나마 기억을 떠올렸으니 조만간 무당을 만날지도 모른다면서, 노인은 그를 잠자리에 들게 했다. 

“오늘은 밭일은 없고, 잠깐 어르신들 모임에 다녀올거니까 집 좀 봐 주게. ”
“네, 어르신. ”
“누가 부르면 창 밖으로 누구인지 보고, 자네 또래의 아가씨가 아니면 절대 대답하지 말게. 자네 또래의 아가씨가 오면 대답하고, 그 아가씨가 묻는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야 하네. 그 아가씨는 흰 옷을 입고, 흰 머리끈을 하고 있을거야. ”
“알겠습니다. ”

노인이 집을 비운 후, 그는 방에 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30분쯤 지났을 무렵,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창 밖을 내다보니 5~60대는 되어보이는 아줌마가 있었고, 그가 아무 말도 안하자 곧 돌아갔다. 

“노씨 어르신, 계세요? ”

또 20분쯤 기다리자,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창 밖을 내다보니, 그와 동갑내기로 보이는,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한 송이 옥잠화같이 예쁜 아가씨가 밖에서 어르신을 찾고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잠시 댁을 비우셨습니다. ”
“처음 듣는 목소리군요. 그쪽은 누구신가요? ”
“저는 다른 곳에서 잠시 와서 머물고 있는 사람입니다. ”
“그러셨군요… 노씨 어르신 말씀 잘 듣고 계시면, 무사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누군가 당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당신도 덕을 쌓고 여기에 온 거니까요. ”

한 송이 옥잠화같은 아가씨는 꽃같은 미소와 함께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어딘가로 가 버렸다. 

“만났구만? ”
“네? ”
“흰 옷을 입고 흰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아가씨 말야. 그 아가씨가 무당 딸이야. ”
“그 분이 무당 따님이셨어요? ”
“참 곱고 예쁜 아가씨지. 어르신들만 있는 마을에서 유일한 젊은이일세… 그 아가씨를 만난 걸 보면, 자네는 늦어도 닷새째에는 돌아갈 수 있을걸세. ”
“어르신. ”
“뭔가? ”
“아까 그 아가씨가 누군가 저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 갔습니다. ”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라… 아마 자네의 가족이거나 친구거나… 주변 사람들일걸세. ”

다음날, 그는 어르신과 함께 옆집 노인의 오이 농사를 지으러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하는 그에게 어르신은 ‘어르신이 오이를 하나 먹어보라고 건넬텐데, 두개 중에서 제일 못생긴 오이를 먹고 무조건 오이에 대해서 칭찬을 한 마디 하게.’라고 하고 5분정도 거리에 있는 옆집으로 갔다. 

오이 농사도 고추농사 못지 않게 힘들었고, 하필이면 여름이었던지라 땡볕때문에 목이 말랐다. 그런 그에게 옆집 노인은 오이를 하나 먹어보라고 했고, 그는 노인이 건넨 오이 중에서도 달팽이처럼 말린 오이를 건네받았다. 농약도 안 친 오이라 그냥 먹어도 된다는 말에 옷에 오이를 슥슥 닦고 먹자, 오이에서 날 수 없는 맛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분명 오이인데 왜 감자맛이 나지? ’

오이에서는 감자맛이 났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이상할 건 없었다. 못생긴 과일이나 야채가 맛은 더 좋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아삭아삭하고 시원한 오이 그대로였다. 

“이야… 어르신,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고 시원한 오이는 처음 먹어봤습니다. 이런 오이로는 뭘 해먹어도 맛있을 것 같아요. ”
“그래? ”
“오씨, 이번 오이농사 아주 잘 된 것 같은데?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들인 보람이 있겠구만. ”

옆집 노인은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손주가 읽던 책이라면서 책 한 권을 건넸다. 집에 돌아와서 그 책을 읽어보니, 책 안에는 그의 이름 석 자는 물론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적혀있었고, 그가 왜 이 곳에 오게 됐는지도 적혀있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마지막장에 망우리(忘愚里)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쓰여있었다. 동 이름으로도 쓰이는 망우와 달리 어리석을 우(愚)자를 써서, 어리석음을 잊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 ”
“이제 좀 기억이 나는가? ”

그가 교통사고를 당한 이유는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도로에 뛰어든 아이를 구하려다가 트럭에 대신 치였기 때문이었다. 차에 치인 이후로 기억을 잃고 망우리에 온 것은 현재 그가 코마상태였기 때문이었고, 그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가 눈을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였다. 

“무당 딸이 자네는 덕을 많이 쌓았다고 했지? 자네가 여기에 오기 전에 했던 일을 두고 한 말이야. 자네가 이 마을에 오게 된 것도 자네가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일세. ”

다음날, 그를 깨운 어르신은 누군가 데리러 왔다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했다. 비척비척 일어난 그를 반긴 것은 요전에 만났던 한 송이 옥잠화같은 아가씨였다. 어서 아가씨를 따라가라는 말에 그는 아가씨를 따라 서낭당으로 갔고, 서낭당 소반 앞에 서 있는 4~50대는 되어보이는,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자를 발견했다. 

“아직 죽지도 않은 놈이 어떻게 예까지 왔어? ”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코마상태입니다. ”
“그래? 사고는 어쩌다가 당했어? ”
“면접을 보러 가던 길에 도로에 뛰어든 아이를 구하려다가 당했습니다. ”
“이름이 뭐야? ”
“박규철입니다. ”

무당이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가지고 가서 노씨 어르신에게 보여주면 뭔지 알려줄거야. ”

무당은 자신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 그에게 붉은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 하나를 건네면서 ‘노씨 어르신’에게 보여주면 알 거라고 했다. 뒷산을 내려오는 그를 뒷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르신에게 붉은 비단 주머니를 보여주자, 어르신은 무당의 말에 사실만을 고한 모양이라고 했다. 

“무당 딸이 급하게 불러서 당부하는 걸 잊었네만, 무당이 묻는 질문에 단 하나라도 거짓을 고하게 되면 자네는 영원히 이 마을의 주민이 되고, 현실에서는 죽게 된다네. 의인인 자네라면 분명 내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무당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
“이 주머니는 어디에 쓰는 것입니까? ”
“이따가 오후 5시 반이 되면 우리 집을 떠나서 마을 입구로 나가게. 입구 옆에 버스정류장이 생길거야. 버스는 매 시각 44분에 오고, 버스에 타면서 그 주머니를 요금함에 내면 돼. ”
“버스 요금함에 이걸요? ”
“버스 기사도 그 주머니가 뭔지 알고 있으니까 알아서 할 걸세. 버스를 내고 적당한 자리에 앉으면 잠들어야 하고, 졸리지 않더라도 눈은 감고 있는 게 좋아. 그리고 한가지 더… 만약 버스에 요금함이 없다면 정류장에서 일어나서 다시 우리 집으로 오게. ”
“알겠습니다. ”

오후 다섯시 반이 되자, 그는 어르신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마을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곧 5시 44분이 되자 버스 한 대가 도착했고, 열린 문 너머로 요금함이 보이자 그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무당에게 받았던 비단 주머니를 요금함에 넣었다. 그가 요금으로 넣은 비단 주머니를 본 기사는 ‘바퀴 바로 위에 앉으면 편안히 잘 수 있다’면서 그가 자리에 앉을때까지 기다렸고, 적당한 차리에 그가 착석한 것을 확인하고 버스를 출발시켰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선가 일정하게 기계음이 들린 탓인지 졸음이 쏟아져서, 그는 거의 바로 잠들었다. 

“……! ”

잠에서 깬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병원 천장이었다. 버스에서 들었던 이상한 기계음은 그의 몸에 연결된 심전도 장치 소리였고, 심전도 장치 외에도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기기들이 많았다. 몸에 통증이 느껴지고, 안구 외에는 움직일 수 없었다. 

“서, 선생님! 환자가 눈을 떴습니다! ”
“뭐라고? ”
“ICU에 입원해있던 박규철 환자가 방금 의식을 되찾았어요! ”

눈알을 굴리는 그를 본 간호사가 깜짝 놀랐는지 담당 의사를 불러왔고,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망우리에 있었던 닷새동안, 그리고 현실에서는 한달동안 코마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가족들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고, 그가 구해줬던 아이의 부모님 역시 아이는 덕분에 무사했고, 코마상태라는 얘기를 듣고 아이가 걱정했다면서도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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