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를 막아주세요. ”
늦은 오후, 괴담수사대를 찾은 젊은 남자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엄마를 막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죽을수도 있다면서, 그는 엄마를 반드시 막아달라고 했다.
“뜬금없이 그렇게 얘기하면 뭘 어떻게 막으라는거야, 물리적으로 격리라도 해? ”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엄한 피해자가 나오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요. ”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어머님을 막으려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
“형 때문이예요. ”
“형? ”
그에게는 형이 있었지만, 몇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그가 엄마를 말려달라고 괴담수사대를 찾아온 이유는, 장가도 못 가고 죽은 형이 안쓰럽다면서 영혼결혼식을 하려는 엄마 때문이었다. 형이 죽은 뒤, 꿈에 형이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무당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엄마는 굿이며 제사며 형이 성불하기 위해서라면 몇백이고 몇천이고 바쳤다. 급기야는 형이 외로워하니 여자와 맺어줘야 한다면서 궁합이 맞는 여자를 찾아 영혼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형과 맺어줄 여자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엄한 피해자 얘기가 나온 걸 보면, 산 사람이랑 영혼결혼식을 맺으려는 모양인가봐? ”
“네. 제 여자친구도 피해자가 될 뻔 했어요. ”
“의뢰인의 여자친구까지요? ”
“네. 결혼하겠다고 인사차 갔을 때, 한자로 이름 쓰는 법이랑 사주를 집요하게 물어봤었거든요.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제 여자친구까지 형이랑 맺으려고 할 줄은 몰랐습니다. ”
그가 결혼할 여자친구를 데리고 갔을 때, 여자친구의 생일을 들은 그의 엄마는 여자친구의 사주를 집요하게 물어봤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태어난 연월일까지는 알아도 시까지는 잘 모르고,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일도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하자 집요하게 가족들에게 연락까지 해서 알아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자친구의 가족과 연락이 안 되어서 그 날은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그와 연인관계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해서 사주를 알아낼 거라고 생각한 그는 그 날 이후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영혼결혼식은 산 사람이랑 하는 거 아닌데… 이거,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네. ”
“그러게요. ”
“말려보긴 했어? ”
“말려봤죠. 근데 씨알도 안 먹혀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빠나 제가 하는 말은 아예 듣지도 않거든요. ”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네요… 혹시 여자친구분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십니까? ”
“1997년 7월 7일이요. ”
“그 날짜가 형이랑 궁합이 맞는 날짜인가보네. 정확히는, 형이랑 비슷한 나이대면서 궁합이 맞는 날짜겠지… 일단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 해서 우리쪽에서도 바로는 안 될 거야. 명함 줄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
남자에게 명함을 건넨 파이로는, 남자가 돌아간 뒤 세베루스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의뢰 이야기를 하면서 남자의 형이 몇년 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지금 명계에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남자의 형이 명계에 있는 것은 맞지만 사인이 사고사가 아닌 자살이었고, 남자의 형은 재판을 마치고 환생하는 대신 명계에서 사자로 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살이요? ”
“네. ”
“이상하다… 저희쪽에 의뢰했을때는 사고사라고 했는데… ”
“일찍 죽은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살했다는 걸 있는 그대로 말했다간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뻔한데 뭐하러 있는 그대로 얘기하겠어요? 그나저나, 이미 성불한 사람을 산 사람이랑 영혼 결혼식을 시키려고 했다고요? ”
“네. 그것때문에 의뢰인은 여자친구랑 헤어졌대요. ”
죽은 사람이 명계에 있다는 건 성불했다는 의미인데, 그럼 대체 의뢰인의 엄마는 뭘 결혼시키겠다고 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뭐래요? ”
“죽은 사람은 이미 성불했는데? 명계에 있고, 차사로 일할거래. ”
“그럼 이미 성불한건가요? ”
“그렇지. 환생만 안 했다 뿐이지, 성불은 했어. 대체 그럼 그 엄마는 뭘 결혼시키려고 하는거지? ”
파이로는 의뢰인에게 연락해 엄마가 죽은 형과 어떤 사이였는지를 물었다.
“엄마랑 형이요? ”
“집에서 크게 싸웠다던가, 그런 적 있어? 진로나 대학 진학같은 거나, 사소한 걸로. 형이 자살한거랑 관련이 있을까 해서. ”
“......! ”
“왜 사고사라고 둘러댄 건 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을 속이려 들지는 마라. ”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10초정도 이어졌다.
“그게... 엄마가 형이 자기때문에 자살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세요. ”
“엄마가 자살의 원인이라고? 혹시 유서같은 거 남아있어? ”
“유서도 있고, 형의 일기장도 있어요. ”
“내가 받으러 갈게, 잠깐만 줘봐. 확인할 게 있어. ”
파이로는 의뢰인에게서 형의 유품들을 넘겨받았다.
“엄마가 순순히 넘겨줬어? ”
“영혼결혼식 때문에 그런다니까 순순히 넘겨주더라고요. ”
‘뭐가 걸려있길래 이토록 진심인거지? ’
사무실로 돌아온 파이로는 의뢰인의 형이 남기고 간 유품들을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일기장은 다이어리로만 대여섯권 있었고, 유서는 일기장 중 한 권에 끼워져 있다고 했다. 죽은 형의 발차쥐를 좇기 위해 첫 권부터 넘겨보던 파이로는, 첫 권 앞표지에 끼워져 있는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는 엄마로부터 도망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말과 그 동안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간섭도 없이 자유로운 동생이 부럽다는 말도 함께 적혀있었다.
의뢰인의 형에게 있어서 엄마는 소위 말하는 헬리콥터 부모였다.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도 모자라서 집착까지 할 정도로 도가 지나쳤던 탓에 남편과도 다툼이 종종 있었다. 슬금슬금 간섭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때였고, 그 때부터 형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 조금이라도 기준에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다시는 아들하고 놀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정도였다. 어떤 친구는 편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또 어떤 친구는 조손가정이라는 이유로, 또 어떤 친구는 운동부라는 이유로, 또 어떤 친구는 날티난다는 이유로. 반대로 친구가 되기 위한 기준에 적합해보이는 학생에게는 자기 아들과 어울려달라고 매일같이 부탁한 적도 있었고, 부탁을 받은 학생이 형을 찾아가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이딴게 엄마라고? ’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간섭이 더 심해져서, 수학여행에도 따라갔다. 또 엄마가 친구들을 찾아가서 자기랑 놀지 말라고 할까봐 형은 일부러 반에서 어떤 친구도 사귀지 않았고, 그런 형을 본 담임선생님이 교우관계가 걱정된다면서 연락했을 때 엄마는 반 친구들에게 빵이나 햄버거를 돌리면서 형이랑 친하게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진로상담에는 빠지지 않고 찾아왔지만, 엄마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들의 직업을 자기 아들에게 강요하다시피 했다. 자기 아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오직 자기 아들을 공무원으로 만들 생각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아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때까지 엄마의 집착과 간섭은 계속됐다.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얘기만 들려도 여자친구가 뭐 하는 사람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연락해서 헤어지라고 했다. 동아리 모임이나 과 모임에서는 1차만 하고 집에 들어가야 했고, MT는 엄마가 따라갈까봐 형쪽에서 일부러 가지 않았다. 형이 자대 배치를 받는 날도 꾸역꾸역 부대까지 찾아와 간부들에게 우리 아들 제발 꿀보직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고, 선임들을 위해 음식을 바리바리 싸 왔다. 선임들은 엄마가 바리바리 싸 온 음식은 고맙지만, 네 입장에서는 참 피곤하겠다고 한마디씩 했다. 형은 그런 엄마에게 제발 이런 짓 좀 하지 말라고 단식투쟁도 해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가출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엄마는 형에게 집착하다시피 했다.
‘이건 부모라기보단 프린세스메이커 아냐? ’
형은 엄마가 바라던 공무원은 되지 못 했지만, 그래도 취업은 할 수 있었다. 직장은 편도로 두 시간 거리였지만, 더 이상 간섭할 수 없기 때문에 엄마가 자취를 극구 반대해서 형은 편도로 두시간이 넘게 걸리는 직장까지 꾸역꾸역 통근을 해야 했고, 막차라도 끊겼다간 무슨 일이 생길 지 몰라 회식에도 참가를 못 했다.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회사로 전화가 와서 자기 아들 칼퇴좀 시키라고 한 적도 있었고, 회사에서 누군가랑 친하게 지낼 기미라도 보이면 흥신소를 통해 뒷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형은 여자친구도 안 만들었다고 한다. 자기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엄마가 꼬투리 잡아서 헤어지라고 할 게 뻔했으니까. 처음에 입사했던 회사도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형이 그런 식으로 사사건건 간섭하면 집 나가서 다시는 엄마를 안 볼거라고 협박해서 그나마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있어서 형은 자식을 넘어선 집착의 대상이었다.
“이건 거의 프린세스메이커인데? 아니, 남자니까 프린스메이커인가? ”
“네? ”
“엄마가 죽은 형한테 집착이랑 간섭이 심했어. 그것때문에 형은 자살한거고... 사인은 세베루스씨 통해서 직접 확인한거니까 확실해. ”
“그럼 왜 아까는 사고사라고 한 거예요? ”
“뭐 좋은 소리 들을 일 있다고 자살이라고 하겠냐... 그리고 엄마가 형이 자기때문에 자살한 것 자체를 인정 못 하고 있대. 아마 그 망집이 삿된 것을 불러 모은거겠지... 그 무당까지 삿된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
“...... ”
“아마 이 문제는 엄마가 바뀌지 않으면 평생 못 고칠거야. ”
아들에게 집착하던 엄마는, 결국 아들이 그 집착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들이 사고사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라고 여기는 삿된 것을 성불시키겠다면서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엄마가 바뀌어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삿된 것이 의뢰인이나 아빠에게 영향을 주면 어떡하죠? ”
“엄마가 불렀는데 왜 엄한 사람을 건드려? 자기를 불러모은 엄마라면 몰라도. ”
파이로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은 다음, 일기장이 든 종이 봉투에 넣었다.
“그건 뭐예요? ”
“사주. 이건 가짜 사주라서, 연월일시에 이름까지 일치하는 사람은 없을거야. 그러니까, 이 사주로 영혼결혼식이 성공했다고 한다면 없는 사람이랑 영혼결혼식을 시켜준 셈이니 무당이 사기꾼이라는 얘기가 되겠지. ”
파이로는 의뢰인에게 일기장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안에 사주가 있으니 엄마에게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영혼결혼식을 할 때 찾아가볼테니 무당집 위치를 알려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후, 의뢰인의 연락을 받고 미기야와 파이로는 영혼결혼식이 거행된다는 무당집으로 갔다. 무당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문을 통해 영혼결혼식을 지켜보기로 했고, 곧 안에서 의식이 시작되었다. 죽은 형의 사주와 파이로가 적어준 가짜 사주를 받아들고 한참동안 의식을 진행한 무당은, 이제 됐다면서 죽은 아들이 외롭지 않게 됐으니 꿈에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어디선가 ‘없는 사람이잖아!’라는 노성과 함께 검은 손이 나와 무당의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무당의 목을 180도로 돌려버렸다.
“저런 걸 보면, 산 사람 죽은 사람 안 가리고 덮어놓고 사주부터 받았던 건 저 놈이 지시한 게 아닐까? ”
“그런걸 왜 지시해요? ”
“꼴에 지도 장가는 가고 싶었나보지. 아니면 말이 장가지, 다른 목적이 있는걸지도 모르고. ”
목이 180도 돌아간 무당이 맥없이 픽, 하고 쓰러지자 검은 손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엄마를 가리킨 다음 ‘살고싶니?’라고 물었다. 엄마가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걸복걸하자, 목소리의 주인은 ‘그럼 니 둘째아들의 몸을 내놓던가, 다시 가서 제대로 된 여자를 찾아와. 한 달 준다.’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무당집을 허둥지둥 빠져나가는 것까지 본 두 사람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의뢰인에게 연락해서 좀 길게 휴가를 쓸 수 있는지 물었다. 어제 퇴사해서 시간은 널럴하다는 의뢰인의 말에 파이로는 사정은 이따가 설명할테니 필요한 짐만 빨리 챙겨서 사무실로 오라고 했고, 의뢰인은 일단 알겠다고 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건물 입구에 도착할 시각에 의뢰인도 같이 도착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짐은 또 왜요? ”
“잘 들어. 일이 해결될때까지 너는 다른 곳에서 지내야 해. 안그러면 몸을 뺏기거나 죽을거야.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영문을 모르는 의뢰인에게 미기야는 영혼결혼식에서 본 것들을 얘기했다. 정체불명의 검은 손이 나타나 무당의 목을 꺾어 죽여버린 것, 그리고 의뢰인의 엄마에게 요구한 것까지. 의뢰인은 쉽게 믿지 않았지만, 파이로가 ‘이대로 가다간 너 아니면 엄한 여자 한 명이 죽을 것’이라고 하면서 네 엄마는 절대 그 놈을 만족시킬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네 차례라면서 의뢰인을 설득했다.
“너는 한달동안 귀왕사에 가서 템플스테이라도 하고 와. 가서 이직 준비를 하든 자격증 공부를 하든, 하고싶은 공부 해. 한 달 안에 우리가 어떻게든 해결 볼게. ”
“...... ”
“단, 네가 의뢰했던 대로 엄마를 멈춰줄 수는 있어도 네 엄마까지 무사할 거라는 장담은 못 해. ”
시계가 6시 55분을 가리킬 무렵, 파이로는 빈 A4용지에 붉은 펜으로 귀왕(鬼往)이라고 적은 종이를 사무실 문에 붙였다. 그리고 여섯시 정각이 되고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보인 것은, 건물 밖의 풍경이 아닌 어느 절의 입구였다. 문화유산에서나 볼 법한 대웅전에는 ‘귀왕사’라고 한자로 쓰여있었고, 본당으로 연결된 다리 옆에는 고요한 물소리가 들리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연못 주변에는 빨간 석산이 한가득 피어있었다. 문이 열린 것을 눈치챈것인지 스님 한 명이 문 쪽으로 다가오자, 파이로는 공손히 합장을 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한달만 의뢰인을 맡아달라는 부탁에 스님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고, 의뢰인이 귀왕사로 간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은 파이로는 종이를 뗐다.
“이제 됐다. 움직이자. ”
“네. ”
의뢰인이 귀왕사에서 지내는 한 달은, 삿된 것이 엄마에게 준 말미이기도 했다. 귀왕사에 가 있는 동안은 전화나 문자, 이메일같은 연락도 전부 불가능하고 귀왕사에서는 GPS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해, 파이로는 일부러 의뢰인을 귀왕사로 보낸 것이었다. 엄마 입장에서 모르는 여자의 사주를 캐고 다니는것보다는, 자기가 살기 위해 아들을 바치는 게 쉬운 선택지일지도 모르니까. 설령 모르는 사람의 사주를 가져다가 삿된 것에게 바친다 한 들, 분명 그 삿된 것이 한번에 만족할 리는 없다. 삿된 것은 결국 의뢰인이나 엄마의 목숨을 가져갈 것이 뻔했다. 엄마가 살아남을지 어떨지는 본인에게 달려있지만, 적어도 의뢰인만은 구하자는 게 파이로의 생각이었다.
의뢰인이 귀왕사에 머문 지 한 달, 엄마는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삿된 것에게 바칠 여자의 사주는 구하지도 못 했고, 자기 아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연락도 되지 않으니 다음은 자기 차례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예의 무당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엄마는, 무당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면서 제발 한달만 말미를 더 주십사 빌었다. 한달만 말미를 주면 아들을 찾건, 여자를 찾건 둘 중 하나는 해드리겠다고 간절하게 빌었지만, 허공에서 ‘이제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줄 수 없는 너한테?’라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손이 나타났다. 그리고 검은 손이 엄마의 목을 조르려는 순간.
-지금이예요!
무당집을 타고 혼불이 빠르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혼불은 알콜에 불이라도 붙인것마냥 무당집 전체를 흐르듯이 태워가기 시작했고, 검은 손 역시 혼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검은 손은 혼불이 붙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엄마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았고, 그 틈을 타 현은 엄마를 무당집에서 꺼냈다. 그리고 같이 들어간 파이로는 뒤에 부적을 붙여 둔 손거울을 밑에 둔 다음 검은 손을 그대로 잡고 끌어당겼고, 손거울에 검은 손을 처박자마자 검은 사람같은 형체가 거울로 빨려들어갔다. 낯선 형체는 저항했지만, 파이로의 악력이 워낙 강해 빠져나갈 수 없이 그대로 거울로 빨려들어갔다.
“상황 종료. ”
혼불이 무당집을 다 태우고, 검은 사람같은 형체가 거울로 완전히 빨려들어간것을 확인한 파이로는 거울 앞면에 부적을 붙이고 거울을 지퍼백에 담았다. 그리고 무당집 밖에 나와보니, 파이로가 아까까지 들어갔던 건물은 무당집이 아니라 구멍가게였던 건물이었다. 아마도, 삿된 것이 이 곳에 살면서 여기를 무당집으로 바꿨거나 엄마에게만 무당집으로 보이게끔 했던 모양이다.
“넌 내꺼야! 이런거 한 번 해 줘야 하나? ”
“무슨 포켓몬 잡으십니까... ”
정신을 차린 엄마가 본 것은 지퍼백에 담은 손거울을 챙긴 파이로와 그 옆에서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는 미기야, 그리고 낯선 남자였다. 칼라가 없는 흰 셔츠를 받쳐입은 남자는, 어딘가 죽은 아들을 똑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무사히 처리했어요. 감사합니다. ”
“차사가 되자마자 처음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제 엄마가 되는 꼴은 차마 두고 볼 수 없었으니까요. ”
“......! ”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길 바라. 동생한테는 똑같은 잘못 저지르지 말고. ”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낯선 남자는 뒤돌아서 홀연히 사라졌다.
“...... ”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인정하는 것도, 때로는 용서받는 길이야. ”
파이로와 미기야는 마침 귀왕사에서 돌아온 의뢰인에게 연락해 엄마는 무사하니 데려가라고 했다.
“엄마는 무사하세요? ”
“무사해. ”
“다행이다... 다행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
“우리도 네 형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거다. ”
“...형이요? ”
“그래. 환생하는 대신 차사로 일하게 됐다는 네 형 말이야. 네 형이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려준 덕분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어. ”
수화기 너머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제 괜찮을거다. ”
잠시 후, 무당집이 있던 곳에 도착한 의뢰인에게 엄마를 인계한 두 사람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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