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수사대는 D구의 어느 가정집에 와 있었다. 강도 살인이라도 있었던 모양인지, 방 이곳저곳을 뒤진 것 같은 흔적도 있었다. 그리고 현장 한켠에 쓰러져 죽어 있는 피해자가 보였다. 피해자는 뭘 하려다가 쓰러진 모양인지 옆을 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현장 이곳저곳에 강제로 덮쳐진 흔적도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 살인사건인데 왜 괴담수사대까지 온 건가 싶었지만, 괴담수사대가 현장에 온 이유는 피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범인이 죽인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피해자는 현장에서 죽어있었다.
“강도살인 현장치고는 깨끗하네. 강도살인이면 저항했든 죽였던 피를 봤을텐데, 이 현장은 그런 게 없어. ”
“듣고 보니 그렇네요. 피해자의 시신도 뭔가 두드러기 같은 게 있는 것 빼고는 이렇다할 게 없어요. 라우드 씨, 영상은 확인해 보셨나요? ”
“용의자가 집 안에 들어와서 피해자의 손발을 묶고, 집 안에 있는 금품들을 턴 다음 피해자의 나체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강간했고요. 아마 사진도 신고하면 뿌릴 요량으로 찍은거겠죠... 그리고 괴로워하다가 쓰러져서 죽었어요. ”
“뭐 직접적으로 살인같은 걸 한 건 아냐? 독극물같은 거 먹이지도 않았고? ”
“응. 처음부터 끌까지 봤는데, 그냥 돈 뺏고 옷 벗긴 다음 찍고 강간한게 다야. ”
“음... ”
피해자의 시신을 유심히 보던 파이로는, 피해자의 하복부에 두드러기 반응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성병중에 증상이 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
“성병... 성병이라... 그건 왜 물어보시나요? ”
“피해자의 국부에서 두드러기가 발견됐거든. ”
“글쎄요... 저는 잘 모릅니다. ”
용의자가 직접적으로 죽인 것도 아닌데,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거기다가 하복부에는 두드러기 반응도 있었다. 만약 용의자가 성병을 가지고 있었고, 피해자를 강간하는 과정에서 성병이 옮았다고 해도 증상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올라올 리가 없다. 여러가지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었던 탓에 실마리를 얻을 수도 없었다.
“독살이라면 전신에 뭔가 나타났을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애초에 강도 살인이나 저지르는 놈들이 정성스럽게 독극물까지 써가면서 피해자를 죽일 리도 없고... 이상하네. ”
“왜 그러세요? ”
“피해자의 하복부에서 두드러기 반응이 보였어. 근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용의자가 성병 보유자였고 그 성병이 옮은거라면, 단시간에 그 증상이 발현되지도 않았을거고... 애초에 성병으로 단시간에 죽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
“그것도 그러네요. 일단 SD한테 한번 여쭤보죠. 형사님, 피해자의 과거 병력이나 알러지 여부같은 걸 좀 알 수 있을까요? ”
“의료 기록을 조회하면 나올겁니다. 확인되는대로 드리겠습니다. ”
“혹시 부검하게 되면, 사인이 뭔지도 알려주세요. ”
현장 조사를 마치고 사흘 후, 미기야는 금 형사로부터 피해자의 의료 기록과 부검 결과를 받았다.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한 질식사라... ”
“나왔냐? ”
“네. 근데 뭔가 이상해요. 피해자의 사인은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한 질식사였는데, 피해자는 어떤 알러지도 없었대요. 그렇다고 용의자가 벌을 풀어서 공격한다던가 했을 리도 없잖아요. ”
사인이 밝혀지면 뭔가 명확히 결론이 나올 것 같았지만, 사건은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됐다. 집을 털러 오는 강도가 말벌집을 투척하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에게 알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피해자의 사인은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한 질식사였다. 현장에도 아나필락시 쇼크를 일으킬만한 물건이나 음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라우드가 확인한 영상에서도 용의자는 맨손이었다. 맨손에 뭘 묻히고 왔다면 현장에 흔적이 남았을테지만, 괴담수사대가 본 현장에서는 우악스럽게 집을 뒤져 금품을 가져간 흔적과 피해자를 강제로 범한 것 외에 별다른 흔적도 없었다.
“아나필락시 쇼크는 알러지원때문에 일어나는 거 아냐? 알레르기가 없는데 아나필락시 쇼크로 죽었다고? ”
“파이로씨, 전에 피해자의 시신에서 두드러기를 봤다고 하셨죠? 두드러기가 어디에서 제일 많이 보였나요? ”
“하복부. ”
“하복부요? ”
“응. ...잠깐만. ”
“왜 그러세요? ”
파이로는 금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하복부 안쪽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금 형사와 통화를 마친 파이로는 SD에게 연락해 피해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을 얘기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이야기를 나눈 파이로는 전화를 끊었다.
“그놈 이제 죽었다. ”
“예? ”
“용의자 말이야. 이거 단순 강도살인이 아니야. ”
“피해자를 강간했으니 단순 강도살인은 아니지. ”
“그런 얘기가 아냐. 금 형사에게 물어봤는데, 부검할 때 확인해봤더니 피해자의 성기 안쪽에서도 두드러기 반응을 보였다고 했거든. 그걸 토대로 SD에게 물어봤는데, 아마 피해자에게 정액 알러지가 있었을거래. ”
“정액 알러지요? ”
“그래서 의료 기록에도 알러지가 없다고 나온거야. 일반적으로 알러지 검사를 할 때는 개털이나 고양이털, 복숭아, 땅콩같은 것만 검사하지 정액에 대해서는 알러지 검사같은 걸 하지 않고, 정액 알러지가 있다는 건 사랑을 나누기 전까지는 모르거든. 그러니까, 그놈은 입막음조로 협박을 하려고 했던거지만 피해자가 정액 알러지를 갖고 있었기때문에 졸지에 살인자가 된 셈이지. ”
물론 알러지가 있다는 걸 몰랐다면 그렇게 무거운 죄를 묻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이미 용의자는 강도에 강간혐의까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알러지가 있다는 걸 몰랐다고 해도 살인을 했다는 게 밝혀진다면, 형량이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는 했지만, 이미 피해자는 죽었으니까.
“범인을 잡는 것은 경찰에게 맡기면 된다지만, 또 피해자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 ”
물론 작정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범인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또 피해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미기야는 금 형사에게 연락해 피해자에게 정액 알러지가 있었을거라고 얘기하면서,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해 질식사한 것도 그것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생소한 알러지인데다가 사랑을 나누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알러지였지만, 용의자가 한낱 불끈거리는 성욕을 참지 못 하고 큰 발자국을 남긴 셈이었다. 금 형사는 피해자의 몸에 남아있던 정액을 토대로 유전자 정보를 입수했고, 지금 근처 CCTV를 조회하면서 수색 중이라고 했다.
“형사님, 혹시 용의자가 피해자의 집에서 훔쳐간 물건이 있나요? ”
“물건이요? ”
“네. 단순히 돈이 목적이라면 현금을 가져가기도 하겠지만, 요즘은 현금을 잘 안 들고 다니니 돈 될만한 물건도 같이 훔쳐가지 않을까 싶어서요. ”
분명 돈을 노리고 왔다면, 돈이 될 만한 물건들도 몇 개 훔쳐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기야는 현장에서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물었지만, 금 형사 역시 사건이 끝난 후 현장을 찾은 터여서 잘 모르고 있었다. 용의자가 돈이 될 법한 물건을 훔쳐갔다고 해도, 무엇이 없어졌는지는 피해자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현장 어디에도 피해자의 핸드폰이 없었어요. ”
“핸드폰이라... ”
“핸드폰이 최신기종이라면, 아마 중고로 팔 요량으로 훔쳤을겁니다. ”
현장 어디에도 피해자의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고, 그 외에 돈 될만한 물건을 훔쳤는지 여부는 미지수였다. 피해자의 핸드폰 기종을 모르니 설령 중고로 팔았다고 해도 중고 마켓에서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판매자에게 컨택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귀신의 촉으로 어떻게 안 돼? ”
“될 리가... 주어진 정보가 어느정도 돼야 추리도 하고 할 텐데, 딱히 이렇다 할 게 없네. 현장에서 영상 봤을 때 그 놈 얼굴이나 복장은 봤어? ”
“봤지. ”
“뭐 특별히 주목할만한 포인트같은 거 있었어? 얼굴에 점이 있다던가, 복장이 특이하다던가. ”
“택배 기사들이 주로 입는 조끼를 입고 있었어. 형광주황색. ”
“택배 기사들이 주로 입는 조끼라... 택배 기사로 위장해서 들어간 모양이군. ”
파이로는 사건 현장이었던 집으로 갔다. 현장 감식을 한 지도 며칠이 지나, 수사중 태이프도 치워둔 평범한 주택이었다. 이런 곳이기때문에 택배 기사로 위장하고 올 수 있었던걸까, 아니면 이런 곳이라서 택배 기사로 위장하고 올 생각을 했던걸까. 여전히 범인 찾기가 오리무중이었던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 연락해 피해자가 명계에 있는지 물었다.
“D구의 강도살힌 피해자, 사인은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한 질식사... 그리고 정액 알러지가 있다... 아, 이분 방금 서류 처리 끝났어요. ”
“혹시 명계에서 서류 처리 할 때, 범죄 피해자들은 어떤 범죄때문에 죽었는지도 기록에 남나요? ”
“사인으로 남긴 하지만, 구체적이지는 않아요. 명계 재판정에서도 피해자한테 좋은 기억은 아니라 굳이 물어보지는 않고요. 그건 왜요? ”
“사건이 완전 오리무중이거든요. 현장에 이렇다 할 단서가 없어서 피해자가 아나필락시 쇼크로 인한 질식사로 죽은 것도 부검하고 나서야 알았고, 용의자에 대해서도 택배 기사들이 입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요. 집에 없어진 물건이 있다면, 그걸 훔쳐가서 중고로 팔았을테니 그걸로 추적이라도 해 볼텐데... 경찰이 아니다보니 이런저런 조사를 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말이죠. ”
“확실히 공권력이 아니라면 사건을 조사하는 건 힘들죠. 하지만 공권력이 아니기때문에 가능한 일도 있지 않을까요? ”
세베루스의 말에 파이로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경찰이 공권력이기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역으로 경찰이 공권력이기때문에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고키부리 사무실에 뒷조사를 맡기는 것도 불가능하고, 무언가를 수색하려면 영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또한 특수한 현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도 있다. 그리고, 공권력이 아니기때문에 괴담수사대에서 가능한 것들도 있다. 전화를 끊은 파이로는 열려있는 대문으로 들어가, 닫혀있는 문을 통과해 사건 현장이었던 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없는 집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돈을 노리고 강도질이나 하러 온 놈이 자기 흔적을 꼼꼼히 숨겼을 리가 없어. 어딘가에 분명 흔적이 있을거야. ’
집에 들어온 파이로는 강도가 돈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어디부터 갈 지 생각했다. 집을 둘러보면 거실과 방 두 개, 그리고 화장실 하나가 전부인 주택이었고 피해자가 쓰러져있던 곳과 가까운 방이 피해자가 평소에 지내는 방인 듯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방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닫힌 문 너머를 들여다보니 그 방은 옷방으로 쓰는 것 같았다. 옷방에도 꽤 비싸보이는 옷들이 있었지만, 용의자는 옷에 대해서 그렇게 해박하지는 않은 모양인지 옷방은 건드리지 않은 듯 했다. 부엌 역시 일반적으로 돈 될만한 것들을 두지는 않았을테니, 가지 않았겠지.
피해자의 방은 너저분한 그대로였다. 용의자가 피해자를 이 곳에서 결박하고 강간했는지 몸부림 친 흔적이 침대에 남아있었고, 책상이며 장식장이며 마구 뒤진 흔적이 보였다. 그 방에서 뭐가 없어졌을 지는 피해자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대충 어디를 수색했을지 흔적은 남아있었다. 파이로는 그 흔적들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은 다음, 책상 옆 쓰레기통을 확인했다. 쓰레기통에는 택배 송장 몇 개가 버려져 있었고, 송장은 박스에서 제거한 그대로 개인정보를 가리거나 지우지도 않은 채 버려져 있었다. 용의자가 송장을 통해 개인정보를 알아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요즘은 집 주소를 알아내고 주변을 조금만 배회하더라도, 금방 집에 누가 사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마련이다.
‘송장을 이렇게 버리면 위험한데. ’
책상에는 노트북 한 대가 올려져 있었던 모양인지, 선이 빠져있었다. 노트북도 고가이니, 아마 용의자가 훔쳐갔을 것이다. 노트북이 있었던 자리 옆에는 핸드폰 한 대가 있었고, 방전된 핸드폰을 충전해 켜 보자 핸드폰은 와이파이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연결된 기기를 보니, 핸드폰 한 대와 태블릿PC 한 대, 노트북 한 대가 나왔다. 피해자가 사용하는 전화기는 아이폰이었고, 아이패드에 맥북까지 갖고 있었다. 현장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세개를 다 용의자가 훔쳐갔을 가능성도 있다. 연결된 기기 정보를 확인한 파이로는 중고 마켓을 뒤져보기 위해 연결된 기기 정보를 찍었다.
방을 다 확인한 파이로는 문간에 놓여있던 택배 상자를 발견했다. 아마도 용의자가 들고 온 모양인지, 송장이 조잡하게 붙어있었다. 상자를 들어봤지만 빈 상자였고, 조잡하게 붙은 송장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처럼 흔들렸다. 파이로는 이것 역시 사진으로 찍어서 가져갔다.
“라우드, 사건 이후로 중고로 올라온 게 있는지 몇 개 조사좀 해줘. ”
“몇 개? ”
“피해자의 핸드폰, 아이패드, 그리고 맥북을 용의자가 훔쳐갔어. 애플 제품은 중고 가격이 어지간해서는 잘 안 떨어지는 편이라, 분명 팔았을거야. 그런거 보통은 암호로 잠가둬서 쓰지도 못 하잖아. IMEI랑 마지막으로 기록된 위치도 담아왔으니까, 찾기만 하면 추적하는 건 수월할거야. ”
“?? 그걸 어떻게 담아온거야? ”
“피해자 집에 갔거든. 이놈이 분명 흔적을 남겼을 거라고 생각해서... ”
“문도 잠긴 집에 들어갔다고? ”
“나 벽 통과 가능해. ”
“아, 그랬지. 이거 다 애플기기네? 이거 굳이 중고로 조사 안 해도, 아이패드랑 아이폰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겠다. 아직 그 집에 있어? ”
“어. ”
“그거 맥북은 몰라도 아이폰이랑 아이패드는 잠글 수 있을거야. 내가 알려주는대로 하고 나와. 그리고 마지막 위치 확인 좀 해 줘. ”
파이로는 공기계를 통해 용의자가 훔쳐갔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잠갔다. 그리고 마지막 위치를 확인한 파이로는, 이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알아내고 그 위치로 찾아갔다. 기기의 마지막 위치는 피해자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이었고, 기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는 택배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차된 택배 트럭은 평소에 오며가며 봤던 것과는 달리 도장이 되어있지 않았고, 열린 문으로 슬쩍 보이는 짐칸에는 포장도 안 된 가방이나 옷가지같은 것들만 잔뜩 실려있었다. 짐칸 안에 든 물건들, 그리고 운전석에 있는 형광색 조끼를 보아하니 아마도 이게 용의자의 차량인 듯 했다. 차량 번호를 찍은 파이로는 주변에 용의자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용의자는 근처에 없었다.
‘빵가루를 좀 떨어트려놔야겠군. ’
짐칸에 올라탄 파이로는 짐칸 구석으로 가 숨었다.
“에이씨, 그놈의 잠금때문에 공쳤네. 암호를 모르니 잠금을 풀 수도 없고... ”
잠시 후, 툴툴거리면서 짐칸을 닫은 용의자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자, 짐칸 구석에서 나온 파이로는 현장에 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서 산 반짝이 가루 봉지를 뜯은 다음 입구를 문짝에 끼우고 차가 출발하기 전에 빠져나왔다. 짐칸에서 반짝이가 솔솔 흘러가면서 트럭이 가는 길에 궤적을 그릴 동안, 파이로는 그 궤적을 따라 트럭이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트럭이 멈춰선 곳에는 쓰레기 봉투가 놓여있었고, 트럭에서 내린 용의자는 쓰레기봉투를 풀어 내용물을 꺼낸 다음, 다음 피해자를 물색하려는 듯 안에 있는 택배 송장을 꺼냈다. 송장을 슬쩍 챙긴 남자가 트럭을 타고 가자, 파이로는 쓰레기봉투에 남아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용의자가 송장을 챙겨간 쓰레기봉투 안에는 사용한 생리대 몇 개와 생활 쓰레기가 들어있었다.
‘여기서 송장을 챙겼다면 다음 피해자는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이겠군. ’
다음 피해자의 위치를 특정한 파이로는 트럭에서 떨어지는 반짝이를 따라갔다. 그리고 또 송장을 뒤지고 있는 용의자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용의자가 송장을 챙기고 남은 쓰레기봉투에는 사용한 생리대 몇 개와 생활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그렇게 반짝이가 다 떨어질때까지 트럭을 따라다닌 파이로는, 반짝이가 그린 궤적을 지도에 기록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뭐 좀 알아내셨어요? ”
“알아내고 엿도 먹이고 왔지. 그놈이 훔쳐간 피해자의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다 중고거래 불발시키고, 그놈 트럭이랑 타겟 찾는 법까지 알아왔어. ”
“타겟을 찾는 법이요? ”
“응. 사용한 생리대가 들어있는 쓰레기봉투에서 온전한 송장을 찾아서 챙기는 것도 봤고... 이게 오늘 그 놈이 중고거래 공치고 움직인 궤적이고, 여기서 쓰레기봉투를 뒤져서 송장을 챙겼어. ”
“사용한 생리대라... 그걸 이용하면 젊은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을 알아낼 수는 있겠군요. ”
“그렇지. 그리고 그 놈의 행적으로 미루어볼 때, 이 지점 부근에 있는 집이 다음 타켓 후보지가 되겠지. 아, 그리고 차량 번호도 알아냈어. 차 외형이랑 차량 번호는 금 형사한테 전해줘. ”
미기야는 수사대에서 조사해서 알아냈다면서 금 형사에게 용의자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형태와 차량 번호를 보냈다.
“라우드씨 얘기로는, 용의자가 택배 기사들이 입는 조끼를 입고 있다고 했어요. 아마 택배 기사로 위장해서 집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
“그렇군요. ”
“참, 형사님. 용의자가 타겟을 물색하는 걸 저희쪽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
“타겟을요? 어떻게 하던가요? ”
“며칠 전 강도살인 피해자가 살았던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쓰레기봉투에 사용한 생리대가 들어있는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었대요. 거기서 손상되지 않은 택배 송장을 발견하고 가져갔다고 합니다. 사용한 생리대가 있다는 건 젊은 여성이 살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
“그 송장을 범행에 활용할 지도 모르겠군요. ”
다음날, 파이로는 용의자가 쓰레기봉투를 뒤졌던 곳으로 갔다. 용의자가 타겟을 물색하기 위해 쓰레기봉투까지 뒤지면서 돌아다니는 곳은 공통적으로 후미진 주택가였고, 인근에 대학교가 있어서 자취하는 학생이 많았다. 최근에 사망했던 피해자 역시 인근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그렇다면 아마 다음 타겟도 자취하는 대학생이겠군, 파이로는 생각했다. 사회라는 전쟁터에 뛰어든 사람들과 달리 갓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사회 경험이 부족했고, 그렇기때문에 털어먹기 쉬울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런 주택가를 돌아다니는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파이로는 주변에 자취생들이 많으면서도 후미진 주택가를 몇 군데 더 찾았고, 그렇게 추려본 결과 피해자의 집이 있는 곳을 포함해 어느정도 용의자가 타겟을 물색할만한 범위가 잡혔다. 그렇다고 해도 용의자의 다음 타겟이 누구일지 집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행동 반경을 추적할 수 있었다.
‘이제 좀 좁혀볼까? ’
사용한 생리대로 젊은 여자가 사는 집을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젊은 여자가 혼자 살고 있을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입장에서 젊은 여자가 혼자 사는 집이라는 걸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창문을 통해 집 안을 들여다보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주택들 중에서도 집 안이 잘 보이지 않거나 평소에 창문을 거의 닫고 사는 집은 피할 것이다. 그렇게 주택가를 돌아다니던 파이로는 며칠 전 봤던 하얀 트럭을 발견했다.
‘차량 번호도 일치하는군. 이놈이다. ’
하얀 트럭에서 주황색 조끼를 입은 남자가 내리는 것과 주택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파이로는 금 형사에게 용의자를 찾았다고 연락했다. 그리고 용의자가 또 범행을 저지르러 들어가는 것 같으니 빨리 오라는 말과 함께, 유사시에는 자기가 용의자를 제압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택배 왔습니다. ”
택배가 왔다는 말에 안에서 문을 열자, 용의자는 짐이 무거워서 안에 내려놓아야 한다면서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 틈에 주택 계단을 올라 세 발짝 뒤에서 용의자를 주시하던 파이로는, 용의자가 집 안으로 들어가 상자를 내려놓고 여자를 덮치려던 찰나-
“잡았다. ”
그대로 뒤에서 용의자를 덮친 다음, 저항하는 용의자를 맨손으로 제압했다.
“저항해도 소용 없다, 이놈아. 이래뵈도 이 몸은 마을에서 제일 가는 강골이었다 이 말씀이야. ”
또 다른 피해자가 될 뻔 했던 여자에게 택배 송장은 잘게 찢어서 버리라는 말을 남긴 파이로는, 경찰에게 용의자를 인계했다.
“아, 너 살인혐의 붙어있는 건 알지? ”
“그, 그게 무슨 말이야? ”
“얼마 전에 니가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털어갔던 여자 있잖아, 나체 사진 찍어서 협박하고 겁탈한. 그 여자가 죽었거든. 니가 강간만 안 했어도 우리가 개입할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지, 그거 하나 못 참아서 겁탈했다가 알러지 반응때문에 사람이 죽는 바람에 우리가 개입하게 됐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이유가 어찌됐든 너는 살인자라 이거지. 최종적으로 형량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교도소 밥 잘 나온다며? ”
'본편 > Main Episo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20. 음악실의 악령 (0) | 2026.02.01 |
|---|---|
| 119. 삿된 것 (0) | 2025.06.01 |
| 117. 빗 속의 여인 (0) | 2025.05.05 |
| 116. 부메랑 (0) | 2025.05.01 |
| 115. 신기원요 (0) | 202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