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을 죽게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집안, 이를 방관한 선생들까지 전부 재기조차 못 하게 만들어주세요. ”
자기 아들을 괴롭혀서 죽게 만든 일진과 합의를 종용하고 합의금으로 입막음하려 든 일진의 부모, 그리고 이를 방관한 선생까지 전부 재기조차 못 하게 만들어달라는 게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은 40대 여성의 부탁이자 의뢰 내용이었다. 한 사람을 괴롭혀서 자살하게 만들고도 뻔뻔하게 돈으로 입막음하려고 했다는 걸 보면 아마 금수저 일진이었던 모양이다.
“아드님을 괴롭혔던 건 한 명인가요? ”
“그 애 말고도 몇명 더 있어요. ”
“그러시군요. 원하신다면 그 애들에게도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체감하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
“아뇨, 그 애 한 명이면 충분해요. 나머지 애들은 적어도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 정도는 했으니까요… ”
그녀의 아들은 일진들에게 찍혀서 괴롭힘을 당했다. 금품 갈취나 폭력 행사는 기본이고 가방셔틀, 숙제셔틀, 핫스팟 셔틀은 물론이고 억지로 게임 레벨 업까지 시켰다. 학교 선생님에게도 얘기해봤지만, 이런 거 들쑤셔봐야 좋을 거 없다면서 형식상으로 불러서 혼내는 게 고작이었고 달리 조치를 취해주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선생님에게 일렀다는 이유로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결국 괴롭힘을 견디지 못 한 아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학교측에서는 이마저 학생들이 한창 공부할 시기라는 이유로 쉬쉬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아들을 괴롭혔던 다른 사람들은 뒤늦게나마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때문에 사람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부모님들도 자기 자식들이 일진 노릇이나 하다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자식들을 귀왕사에 보내서라도 사람 만들어놓겠다며 사과했다. 주동자만 빼고 말이다. 주동자는 물론 주동자의 부모들도, 인두껍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은 사람들이었다. 장례식장에 찾아오지 않은 것은 물론, 그까짓 애새끼 하나 죽은 게 뭐가 대수냐면서 자기 아들 대학 입시에 방해되니까 이 돈이나 받고 퉁치라면서 돈이 든 봉투를 던져준 게 고작이었다. 물론 그녀는 당신네들은 물론이고 이 사건을 방치한 선생도 같이 지옥으로 보내겠다면서 돈봉투로 자기 아들을 죽게 만든 주동자의 따귀를 때렸다.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될거라고 생각하는 것 부터가 문제네요. 좋습니다, 그들에게 재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 할 지옥을 선사해드리도록 하죠. "
마음같아서는 만티코어에게 보내서 도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단번에 죽기때문에 기각했다. 적어도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려면, 이승에서 후회하고 저승에서 또 벌을 받는 게 낫지. 그렇게 생각한 도희는 가해자가 다니는 학교로 서진을 보내, 정승현이라는 학생에 대해 알아볼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서진의 보호자역으로 가게 된 태형은 중국에서 크게 사업을 하다가 성공한, 잠시 전학 절차를 밟기 위해 들어온 학부모 역을 자처했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돈냄새를 맡게 마련이니, 분명 금수저 집안에서 전학온 친구가 있다고 하면 달리 뭔가 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전학 첫 날, 서진은 태형이 모는 캐딜락을 타고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태형과 함께 전학 수속을 밟으면서, 서진은 승현의 반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서진은 이렇게 되면 한번에 두 사람에 대해서 알아봐야 하나 생각했는데, 전학 수속을 밟으면서 담임 선생님을 지켜보니 태형이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해서 돈을 꽤 벌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태도가 미묘하게 공손해졌다. 아마 가해자의 괴롭힘을 덮고 넘어갔던 것도 가해자가 돈이 많아서였겠지.
'이런 인간들이 오히려 나락으로 보내기는 편하겠네. '
승현이 있는 반으로 간 서진은 일단 타겟인 승현과 우선적으로 친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승현과 어울리면서 일진 노릇을 하던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승현을 공략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중 한 학생으로부터 승현의 부모님은 크게 회사를 하고 있다는 것과 승현이 S대 치대를 지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때문에 피해자가 죽었음에도 학교측에서 쉬쉬했을거라는 얘기도 같이. 이제 생활기록부에도 학교폭력 이력이 기록된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게 기록됐다간 S대 치대는 물 건너갈지도 모르니 승현의 부모님도 꽤나 열심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촌지를 주고받을 지도 모른다.
"근데 이렇게만 해도 되는거예요? "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 충격이 크잖아. "
"아하. "
중간고사 성적이 게시됐을 무렵, 학생들은 서진의 점수를 보면서 수군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나를 겨우 뗀 서진이 객관식은 물론이고 서술형에서 만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일본어로 물어보면 버벅거리면서 대답도 잘 못 하는 서진이 일본어 문제를 딱 하나 틀렸다고?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장서진이 하나 틀렸대. "
"진짜? "
"봐봐, 97점이야. "
"진짜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너 회화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만 틀렸어? "
"아버지가 중국에서 크게 사업하셔서, 어릴적에 중국에서 살다 왔었거든.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형태만 조금 다르지, 한자는 많이 봤던 거라 익숙해서 가나만 어느정도 알면 뜻을 이해하는 건 문제 없어. "
승현이 다니는 학교의 제 2외국어는 일본어였고, 승현도 집에서 과외를 받았던 게 있어서 서진이 전학오기 전까지는 반에서 1등이었다. 하지만 서진이 전학온 후, 1등을 유지하는 데 위기가 찾아올 정도로 서진은 일본어를 막힘없이 잘 했다. 서진의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했고, 그때문에 중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중국어를 잘 한다고 일본어까지 잘 하게 되는 건 아니었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이니 한자를 읽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고, 가나정도만 익히면 한자와 가나를 통해 뜻을 이해하는 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죽은 학생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퍼졌어? "
"승현이랑 다른 학생들때문에 자살했다는 얘기요. 애들도 다 알고는 있는데, 담임선생님 있을때는 죽은 학생 이름 언급하면 담임이 뭐라고 해서 담임 없을 때만 얘기하는거예요. "
"그런다고 언제까지 쉬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
"슬슬 시작할까요? "
"그러죠. 수시는 언제 접수하니? "
"조만간 할 거라고 들었어요. 걔 S대 치대 쓴다고 하던데, 보니까 딱 거기만 쓰려는 모양이더라고요. 자기는 거기 한군데만 써도 될거라고... "
"도희씨가 움직일때, 저희도 움직이겠습니다. 미래는 시험장에 가서 상황을 좀 봐 줘. "
승현이 S대 치대에 수시 원서를 내는 시기에 맞춰, 도희는 S대 치대에 익명으로 투서를 보냈다. 투서에는 승현이 했던 짓과 그로 인해 사람이 죽은 사실, 그리고 그 부모님이 했던 만행들이 쓰여있었고, 당시 사건에 대한 증거가 들어있었다. 며칠 후 면접장에 갔던 미래의 말에 의하면, 학교측에서 그 투서를 확인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수시 면접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100%였다. 결과가 발표된 건 아니었지만, 옆에서 면접관의 반응을 지켜보건대 누가 봐도 탈락이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자충수를 두더라고요. "
"자충수요? "
"네. 면접관이 '협업이 중요한 상황에서 갈등이 생긴 적 있었는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그때 자충수를 뒀어요. 걔 성적 반에서 1등인 거 확실해요? 전교 1등이라고 했던 것 치고는 되게 수준 떨어지는 발언들을 많이 하던데... 질문에 대답할 때 쓰는 어휘도 그렇고요. 그 황금 가면 쓴 아저씨가 걔보다 말 더 고급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
면접장에 갔던 미래의 말에 따르면, 면접관이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했던 방법에 대해 물었을 때 '간접적으로 경고를 줬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들은 교수님들이 어떻게 경고를 했냐고 묻자 다 같이 그 학생이랑 거리를 뒀다는 이야기를 했다. 직접 괴롭히는 것만 아니지 따돌렸다는 얘기를 대놓고 했다는 것을 들은 한 면접관이 '나중에 치과를 개원하게 됐을 때, 처방이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환자를 만났을때도 그런 식으로 대처하실 생각인가요?'라고 묻자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듯 했다.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본디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승현이네 부모님이 선생님한테 촌지 이런거 준 거 아냐? 서진아, 승현이네 부모님이랑 학교에서 만난 적 있었어? "
"나는 교실에만 있었으니 모르지. 아, 현동이형이라면 알 지도 모르겠다. 형, 혹시 승현이네 부모님이 학교 찾아온 적 있었어요? "
"진로 상담 하러 종종 찾아오긴 했지. 근데 뭔가 이상한 정황은 못 느꼈어. "
"요즘은 촌지를 준다고 해도 구시대적으로 주지는 않을거예요. 현금이 아니라 비트코인으로 줄 수도 있는거고요. "
승현이 S대 치대 수시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승현의 부모는 부랴부랴 학교로 찾아왔다. 그 때 마침 밖에서 일을 보고 있었던 현동이 슬쩍 엿들은 대화 내용에 따르면, 승현의 부모는 승현을 S대 치대에 보내기 위해 담임에게 촌지를 줬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문제를 유출한 정황 및 생활기록부를 조작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대화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현동은 일하는 척 슬쩍 들어가 대화를 녹음했고, 녹취본을 들은 도희는 이를 교육청에 '학교폭력 가해자때문에 피해자가 자살했는데도 학교측이 쉬쉬했다, 피해 학생이 선생에게 상담했는데도 덮고 넘어갔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민원과 함께 보냈다.
"교육청에서 조사 나온다고 하면, 학교측에서도 더 이상 쉬쉬하지는 못하겠죠. 태형씨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
"저쪽에서 좀 무리해서 투자를 하는 것 같더군요. "
서진을 통해 승현의 부모님이 하고 있는 회사를 알아낸 태형은 부모님에게 접촉해, 중국에 진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 여기서 만드는 제품이 중국에서도 잘 나갈 거라면서 아직 경쟁 업체가 없을 때 파이를 차지해두는 편이 좋다고 하자 솔깃했는지 두 사람은 태형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형이 자기가 알리 익스프레스 회장과도 잘 아는 사이이니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자, 두 사람은 태형에게 잘 부탁드린다면서 연신 굽신거리고는 선물까지 챙겨줄 정도가 되었다.
승현의 부모님은 중국으로 판로를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부대 시설을 더 확충하고, 사람을 쓰기 위해 돈을 더 투자했다. 물론 그들도 영위하는 사업이 잘 되고 있었으니 투자하는 데 문제는 없었겠지만, 이왕 파이를 먹을거면 한번에 크게 먹자는 욕심이 생긴 그들은 가진 돈에 대출금까지 보태서 투자했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답게 사람들이 돈 쓰는 스케일도 남다르고, 사업 아이템만 괜찮다면 돈을 쓸어담는 건 따 놓은 당상이라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잘 되면 투자한 것 그 이상으로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승현의 부모님이 중국 현지 쇼핑몰에 막 입점했을 때 도희가 넣은 민원이 교육청에서 접수된 것 때문에 두 사람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담임 선생에게 촌지를 비트코인으로 준 것과 시험지 문제 유출 건 때문이었다. 교육청에서 직접 감사를 나온 탓에 학교측에서도 더 이상 쉬쉬할 수 없었음은 물론, 학교측의 대처 역시 불판 위에 올라갔다.
"주문이 한 건도 안 들어왔다고? "
"아직 홍보가 덜 돼서 그런 거 아냐? 광고를 좀 더 해볼까? "
어떻게 퍼진건지, 중국 현지에도 승현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과 승현의 부모가 저질렀던 만행이 퍼져있었다. 중국은 넓고 사람들이 돈 쓰는 스케일도 다른 건 맞지만, 사람들이 움직이는 스케일 역시 달랐다. 누군가 승현과 승현의 부모가 저지른 일을 올린 SNS 글에는 '동네 무허가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사더라도 이런 살인자 가족 브랜드 제품은 거른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지만, 그들의 뿌리는 썩어 있었다. 그런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힐 리가 있겠나?', '아이 하나 죽여놓고 우리나라에서 돈 벌겠다고? 꺼져라.', '선생한테 돈 찔러서 대학 갔다는 얘기도 있던데, 결국 다 까발려졌지. 이런 집안이 하는 회사를 어떻게 믿어?'라는 댓글들이 올라가 있었고, 다른 댓글들도 전부 '이런 회사에서 사느니 한국으로 직접 가서 다른 브랜드 제품을 사겠다'는 반응들이었다.
결국 승현의 부모님이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생산했던 제품들은 악성 재고가 되었고, 아무리 싸게 올려봐도 팔리지 않았다. 사정은 국내도 마찬가지여서, 승현이 했던 만행이 실린 기사에는 '사람 하나 죽여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게 진짜 소름이다. 그런 애를 키운 부모면 말 다 했지.', '가정교육이 저 모양인데 회사 운영은 제대로 했을까?', '제일의 가치가 정직이라는데 정작 회사 대표는 촌지 준거임? 이거 모순 아님?', '아무리 가격이 저렴해도 기업 윤리가 이 모양이면 그냥 불매지.'라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승현의 부모님은 마케팅 비용에 돈을 더 쏟아부었다.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보기도 하고, 중국에서 핫하다는 인플루언서들에게 접촉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들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하나같이 그쪽 회사 제품은 광고하지 않는다면서 거절했다. 그들은 태형의 말만 믿고 중국에서 잘 팔릴 것을 생각해서 대량으로 찍어냈지, 잘 안 될 상황에 대해서는 대비 하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성 재고를 처리할 방법조차 없었다. 심지어 승현과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이 퍼질거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 못 했다. 그들은 태형이 알리 익스프레스 회장과 친한 사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부디 해결좀 해 주십사 연락했지만 태형은 기사를 봤다면서, 그쪽 사람들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신뢰인데 일진인 아들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선생님한테 촌지 주는 사람을 누가 믿겠느냐고 할 뿐이었다.
"승현이는 반에서 어때? "
"S대 치대 수시에 올인했다고 했는데 안됐고, 다른 대학에 수시 넣은것도 다 안돼서 정시에 올인한대요. "
S대 치대를 떨어진 승현은 부랴부랴 다른 대학에도 수시 원서를 넣었지만, 승현이 원서를 넣는 대학마다 도희가 투서를 넣어서 그는 수시 면접에서 탈락했다. 면접을 보는 곳마다 미래가 수험생을 가장하고 잠입해서 지켜보거나, 현수나 여울이 교직원을 가장하고 지켜봤는데 승현은 면접을 볼 때마다 자충수를 날려서 자기 인성이 바닥이라는 걸 까발리곤 했다고 한다.
"아, 그러고보니 담임쌤 바꼈어요. 촌지 주고받은거랑 시험지 유출한 거 걸려서... "
"그럼 승현이도 전학 가야 하는 거 아냐? 걔 학교는 계속 다녀? "
"3학년이라 전학보내기 애매한가봐. 그래서 담임쌤만 바꼈어. "
승현의 만행을 보고도 덮었던 학교측은 '일진놀이를 덮는 학교', '살인자 만드는 학교'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그리고 승현의 생활기록부를 위해 만행을 덮고 넘어간 담임선생님 역시 교직에 더는 설 수 없게 됐다. 거기서 끝났더라면 입에 풀칠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누가 퍼트린 건지 신상이 다 까발려져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 조차 녹록치 않게 됐다. 담임선생님에게는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촌지를 받았다는 것과 괴롭힘을 묵살했다는 것에 충격받은 여자친구는 그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오늘 이사날 아냐? 아빠는 또 어디 갔어? "
"노동청에. "
"노동청? 왜? "
"퇴사한 직원이 진정서 넣었단다. "
승현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회사는 결국 악성 재고만 떠안고 망했다. 동남아 공장에서 악성 재고들을 다 사 가긴 했지만, 원가의 1/10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였다. 그 동안 무리해서 투자한다고 빚 냈던 건 공장 설비나 부지, 차, 명품들을 팔아서 어찌어찌 해결했지만 그러는 와중에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는 직원들을 막을 수는 없었고, 직원들의 퇴직금을 주지 못 해서 노동청에 불려갈 정도가 되었다. 집까지 팔아서 직원의 퇴직금을 어찌어찌 정산했지만, 모자라는 비용만큼 또 빚을 져야만 했다.
"너 원서 넣었던 건 어떻게 됐어? "
"다 떨어졌어... "
수시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한 뒤로 승현은 부랴부랴 정시에 도전한다고는 했지만, 원래 성적이 좋지 않았던 승현이 반에서 1등이었던 건 시험지 유출때문이었기 때문이었고 모의고사 등급은 잘 나오지 않았다. 물론 모의고사에서 죽쑤다가 수능에서 등급이 잘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기야 있겠지만, 승현의 머리로 그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정시에서 낙방한 승현은 재수를 해야 했지만, 집안 형편상 학원을 보내거나 인강을 끊어주는 것은 무리였다. 혼자서 공부해보려고 했지만, 그 동안 유출된 정답만 외울 줄 알았던 승현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 문제부터 막혔고, 심지어는 인수분해를 어떻게 하는 건지는 물론 근의 공식이 뭔지도 몰랐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재수하는 데 드는 돈을 벌고 싶었지만, 승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항상 탈주하는 사람이 많은 물류센터 상하차정도가 고작이었다. 식당이건 카페건,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사람들이 승현을 알아본 모양인지 번번이 미역국을 먹어야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애매했던 승현은, 물류센터 일이라도 하면서 재수할 비용을 벌어보려고 했지만 일을 하다가 지게차에 치여서 허리를 찍히는 바람에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다.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승현의 부주의였기 때문에 산재 처리가 불가능했고, 승현의 부모님은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휘는 건 둘째치고 승현의 돌봄 비용까지 벌어야 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
승현과 승현의 부모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한탄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보증금 없는 반지하 달방과 빚, 그리고 장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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