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
“어제 전화로 의뢰 드렸는데, 한번 방문해달라고 하셔서요. ”
“아, 어제 그 분이시군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
아침부터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아온 것은 30대 중후반은 되어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전남편과 전 시댁이 다시는 연락도, 접근도 하지 못 하게 해 달라는 의뢰를 넣은 의뢰인으로, 내방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연을 들려달라는 말에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았다. 그녀를 맞이한 도희는 사무실 안쪽으로 여자를 안내하고, 물 한 잔을 내 온 다음 그녀에게 사연을 물었다.
“전남편과 이혼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
“아버지 회사가 부도났거든요. ”
“부도요? ”
“네. ”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라, 본인 아버님의 회사가 부도난 것 때문에 이혼하신건가요? ”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이예요. ”
도희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혼의 원인은 장인어른, 즉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의 부도였다.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은 그녀가 막 신혼여행에서 귀국했을 때였고, 귀국하자마자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에게 전남편은 이혼하자는 말을 한 뒤 짐을 싸서 시댁으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전 시댁은 그런 전남편을 혼내기는 커녕, 회사가 부도나면 자기들도 덤터기 쓸 줄 어떻게 아냐면서 오히려 빨리 탈출한 게 다행이라고 전남편을 칭찬했다.
“이혼해놓고 왜 다시 재결합을 요구하는건가요? ”
“부도 위기를 극복했으니까요. ”
“부도 위기를 극복하셨다면, 지금도 아버님의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겠군요? ”
“네. ”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 지,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는 부도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은건지, 이혼하자고 돌아섰던 전남편과 그런 전남편을 편들었던 시어머니가 번갈아가면서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하고 있다. 자기는 위기라는 말을 듣고 바로 이혼한 집안과는 재결합 생각이 없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도 해 봤고, 매몰차게 내쳐도 봤고, 경찰도 불렀고, 접근금지 신청까지 했음에도 그들은 꾸역꾸역 그녀를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녀는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접근금지 신청을 한 후로도 계속 찾아왔나요? ”
“네. 그래서 신고한 적도 몇 번 있었어요. ”
“혹시 모르니, 당분간은 다른 곳에서 지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단 친정에라도 가 계세요. 저희쪽도 남편과 시어머니를 완벽하게 떼어드리기 위해서는 사전 조사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사도 고려해보세요. ”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제발 두 사람이 저한테 연락도, 접근도 못 하게만 해 주세요. ”
사무실을 나가는 그녀에게, 도희는 조사원 역으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붙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전남편과 전 시댁에 대해서 조사를 맡겼다. 먼저 그녀의 전남편에 대해 조사한 도희는, 전남편이 일하고 있는 직장에 현수를 파견하고 전 시댁 근처에 태영을 파견했다. 현수는 전남편의 직장에서 전남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시어머니 또래로 변신한 태영은 시어머니와 친해지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처리하기는 꽤 쉬울 것 같네요. 맹목적으로 돈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니… ”
“돈만 바라보고 있다고요? ”
“애초에 결혼한 목적이 돈이었어요. 의뢰인의 아버지 회사 규모가 꽤 컸고, 자식이라곤 의뢰인 한 명 뿐이라서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의뢰인을 사랑한 게 아니라, 의뢰인의 배경을 사랑한거죠. ”
“그래서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혼한거군요. ”
“그런 셈이죠. ”
애초에 전남편이 그녀와 결혼했던 이유는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배경을 사랑해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꽤 규모가 있는 회사의 사장이었고, 그녀는 그런 사장의 외동딸이었다. 그러니까 전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녀와 결혼해 사위가 되면 회사 사장 딸의 남편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만 하면 차기 사장이 될 수도 있는 기회였다. 처음부터 그녀는 전남편에게 있어서 돈이자 기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역으로, 그렇기때문에 아버지 회사가 부도 위기라는 얘기를 들은 전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을 얘기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결혼하게 되면서 얻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익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순간이니까.
태영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맹목적으로 돈만 노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전남편이 재결합을 요구하는 이유도, 전 시어머니가 재결합을 요구하는 이유도 그저 의뢰인 아버지의 회사가 사세를 회복했기 때문이예요. 잃을 거라고 생각하고 손절쳤던 배경과 돈을 다시 되찾을 수 있게 됐으니… ”
간단하게 두 사람을 떼어놓는 방법은 사세를 회복했던 회사가 다시 부도났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인 이상 언젠가 들킬 위험이 있고, 그렇게 된다면 두 사람은 다시 의뢰인에게 찾아가 재결합을 요구할 게 뻔했다. 그렇다면 맹목적으로 돈을 노리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태영은 도희에게 여울과 함께 가서 두 사람을 확실히 떼어놓을 방법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을 떼어놓을 확실한 방법이요? 혹시 뒷세계의 힘이라도 빌리는건가요? ”
“아뇨, 저희가 의뢰인보다 더 부자인 행세를 하면 됩니다. 의뢰인 아버지 회사의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지 조사만 마치면, 바로 착수할 수 있어요. ”
“알겠습니다. ”
태영은 의뢰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 규모를 알아낸 다음, 작전을 짰다. 일단 전남편과 접점이 있는 현수를 통해 전남편에게 접근하기로 정한 후, 현수에게 전남편이랑 함께 있을 때 회사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작전 당일, 현수와 전남편이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현수를 찾아온 여울을 본 전남편은 깜짝 놀랐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큰맘먹고 지를까 말까 한 비싼 명품을 온 몸에 도배하다시피 한 여울의 뒤에는 검정색 차량이 있었고, 그 차량 근처에는 수행 기사로 변신한 태영이 서 있었다. 여울이 타고 온 차는, 긁기만 해도 아파트 한대값은 족히 나올법한 차였다. 현수가 여울과 이야기를 나눌 동안, 여울이 타고 온 차와 여울이 입고 있는 옷을 눈으로 스캔한 그는 현수에게 여울과 어떤 사이인지를 물었고, 현수가 여울을 사촌 누나라고 소개하면서 ‘오늘은 저 만나러 온다고 좀 저렴한 차로 몰고 온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저렴한 차…? 저거 캐딜락 아냐? 캐딜락이 저렴한 차라고? ”
“네. 이모네가 중국에서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셔서, 중국에 있는 본가에는 롤스로이스 팬텀이랑 부가티도 있대요. 최근에는 람보르기니도 하나 커스텀으로 주문제작 했다고 하던데… 그건 거의 몇백억 들었대요. 예전에 유럽 별장 갔을 때는 포르셰 태워줬었고요. ”
“부가티? 롤스로이스 팬텀? 거기다가 포르셰까지? ”
남들은 하나 갖기도 버거운 차를 여러대 가지고 있다고? 심지어 하나같이 가격들도 억소리 나오는 차를? 거기다가 별장까지 가지고 있다고? 그 역시 중국 부호들은 씀씀이의 스케일이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외에도 현수를 통해 들은 여울의 집안 스케일은, 지금껏 그가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많은 부자들을 따위로 만들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중국에서도 바다쪽에 있는 집은 가족들 개인이 한 층을 따로 쓰는 최소 3~4층 이상은 되는 집이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기 힘들다고 집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 가구는 전부 주문제작에 보석 하나씩은 포인트로 박아넣을 정도였고, 이불에는 금실로 수를 놓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여울이 지내는 중국 집은 바다쪽으로 통창을 내놓아서 오션뷰가 장난이 아닌데다가, 한 층 넓이만 해도 엄청 커서 각 층별로 청소만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정도고, 밤에 출출하면 호텔 룸 서비스 신청하듯 부엌으로 전화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하기만 하면 된다. 음식에 트러플은 기본적으로 하나를 통으로 갈아넣고, 캐비어는 최소 알마스에서 임페리얼만 취급한다. 그 외에 비싸서 먹기 힘들다는 재료들도 여울네 집 사람들에게는 그냥 식재료 1일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비싸다는 로마네 콩티는 매년 사다가 집에 쟁여두고 마시는 와인 1이고 돔페리뇽 로제는 그냥 가볍게 마시는 술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심지어 여울이 들고 다니는 가방도 그냥 동네 마실 나갈 때 드는 정도이고, 중국 집에 있는 진열장에는 그것보다 훨씬 비싼 가방들이 한가득이다. 심지어 여울이 오늘 입고 온 옷도 그냥 동네 마실 갈 때 입는 옷이고, 집에는 더 비싼 옷들이 한가득이었다.
“중국 재벌들은 명품관 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달라고 한다잖아요? 우리 누나가 실제로 그래요. 아예 매장에 진열된 명품들을 다 사가서, 누나가 명품관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버선발로 맞아준다니까요? ”
“뭐? ”
“누나 한번 왔다가면 그 매장은 문 닫아야 할 정도로 엄청 사거든요.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갑 하나 갖고싶다고 했더니, 갖고싶은 브랜드를 말하라면서 거기 있는 지갑이란 지갑은 다 사주려고 하길래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겨우 말렸을 정도예요. ”
여울이 소유한 별장은 담장 안과 밖이 아예 다른 세계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정원이 매우 잘 꾸며져 있다면서 현수가 보여준 사진에는 메타세쿼이아가 양 옆으로 심어져 있는 길이 보였다. 이거 미국인가 어디 있는 메타세쿼이아 길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는 ‘누나가 메타세쿼이아 길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심은거고, 누나 별장 마당이 맞다’고 했다. 마당이 대체 얼마나 넓길래 이런 걸 심은거냐고 물은 전남편에게 현수는, 도보로 대문에서 별장까지 마당을 가로질러 이동하려면 3~40분은 족히 걸리기때문에 반드시 차나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별장에는 아예 별장을 돌면서 운전하는 전임 기사와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따로 있고, 별장에서 요리를 전담하는 요리사와 청소 및 가사 전반을 관리하는 사용인이 따로 있었다.
“이모가 그래서 근심이 좀 깊으세요. 누나는 어릴적부터 사용인들이 요리해주는 거에 익숙해져있어서 요리를 못 하거든요. 결혼하면 남편한테 밥정도는 해줄 줄 알아야 하는데, 아예 요리를 할 줄 모르니까요. 시집살이라도 했다간 평생 배달음식이나 레토르트만 먹어야 할 지도 몰라요. ”
“진짜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대? ”
“네. 라면도 끓일 줄 몰라요. ”
현수가 얘기하는 것들이 한번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울네 가족들이 가진 부는 스케일이 달랐다. 마치 중동의 석유부자들을 연상케 하는 부에 입을 다물지 못한 그는, 여울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를 물었고 현수는 다들 누나의 스케일을 감당 못 해서인지 연애해도 며칠을 못 가고, 지금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현수에게 혹시 돌싱도 괜찮으면 한번 얘기정도는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현수는 그런 지한에게 누나의 스케일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지만, 여울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부에 넘어간 지한의 답은 한 가지, YES뿐이었다.
“누나가 선배 한번 만나보겠다는데요? ”
“정말? ”
여울이 흔쾌히 전남편을 만나보겠다고 했을 때, 그는 머리를 굴렸다. 한 층을 한 명이 다 쓰고, 명품을 진열해 둘 정도로 스케일이 엄청난 집안의 사위가 된다면 앞으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이놈의 회사도 당장 때려치울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여울에게 오빠나 남동생이 없다면, 자신이 사위로 들어가서 그 회사를 이어받을 수도 있다. 물론 회사를 이어받지 않고 결혼생활을 적당히 유지하기만 해도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롤스로이스 팬텀, 부가티, 포르셰를 몰아보고 거대한 별장에 갈 수도 있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맥주 꺼내듯이 로마네 콩티를 마셔볼 수도 있고, 돔페리뇽 로제를 먹어볼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 부인에게 재결합을 요구하는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수지맞는 장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지한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장여울입니다. ”
지한이 여울과 처음 만난 곳은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걸로 알려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지한이 깜짝 놀라자, 여울은 여기는 한국에 올 때마다 들리는 곳이었는데 최근에 미슐랭 3스타를 받고 나서 예약이 많아져서 방문하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자기가 사겠다는 말에서 지한은 그녀의 스케일을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다. 보통은 큰맘먹고 와야 하는 곳이었고, 가격대가 누구한테 사달라고 하기도 미안할 정도인데 그녀는 이런 곳을 마치 동네 맛집 드나들듯 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이 사람을 꼭 물어야 한다고 결심한 그는, 전부인에 대한 것은 전부 잊고 오직 여울과 결혼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여울과 지한은 곧 결혼할 사이로 발전했고 중국에 있는 여울의 집으로 인사차 방문하게 되었다. 지한이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쩌냐고 물었을 때, 여울은 돌싱이 무슨 상관이냐면서 부모님도 자신이 결혼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으니 그런 걸로 반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여울이랑 결혼하겠다고? ”
“우리 딸은 자기 손으로 밥 한번 해본 적 없는데, 정말 괜찮겠는가? ”
반대는 커녕, 여울의 부모님은 자기 손으로 음식 하나 제대로 못 하는 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지한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것이, 부의 스케일이 꽤 큰 여울에게 있어서 집안일은 상당히 사소한 일이었고, 그런 사소한 일들은 다 사용인에게 맡겨뒀기 때문에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면 살림 하나 제대로 못 한다고 타박을 놓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한이 그런건 상관 없다, 어머니에게서 배워도 되고 여차하면 자기가 처가살이를 하겠다고 하자 여울의 부모님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불리한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감내할만큼, 여울의 부는 막대했다.
하지만 결혼이 그렇게 순조롭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집안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였기때문에, 여울에게는 사소한 것이 지한에게는 아니었다. 여울은 지한이 요구하는 예물을 다 해 주면서도 푼돈 조금 나갔네? 라고 할 정도였지만, 반대로 지한은 여울쪽에서 요구한 예물을 전부 사려면 은퇴할때까지 숨만 쉬고 일만 해야 했다. 그도 그럴것이, 모렐에 한번도 발 들인 적 없는 그에게 여울은 모렐에서도 VVIP들만 살 수 있는 콜렉션을 요구했고, 그 콜렉션은 반지 한 점에 최소 1억은 하는데다가 목걸이까지 세트로 맞추게 되면 3~4억까지도 나오게 된다. 주얼리들을 여울 본인만 착용하는 게 아니라, 여울의 부모님 몫까지 사야 했다. 그나마 여울의 동생이 아직 청소년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여울은 ‘동생은 아직 이런 걸 착용할 나이가 아니니 명품 백팩으로 사야 한다’면서, 비싼 명품가방을 요구했다. 이쯤되면 지한은 여울의 부를 얻기 위해 이 조건을 수락할지, 아니면 여울의 부를 포기하고 이 조건도 포기할지를 정해야 했다.
“뭐? 좋은 아가씨 만났다고 좋아하더니, 왜 파혼을 해? ”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야. 가족들 주얼리만 해도 12억이고, 거기다가 동생 가방까지 명품 백팩으로 해달라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해… ”
지한은 여울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여기서 끝내려고 했지만, 지한의 엄마는 무리해서 어떻게든 결혼을 성사시킬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여울과 결혼만 하면, 그 이상의 부가 수중에 들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3~4억이 껌이라고 할 정도면 돈이 엄청 많다는 얘기이니, 어떻게 해서든 이 결혼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지한의 엄마는 여울을 만났다. 그리고 여울을 설득해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일단 결혼생활을 하면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예물을 해주겠다면서 자기 아들을 잘 봐주십사 부탁했다. 하지만 이런 지한 엄마의 선택은 되려 역풍을 맞고 말았다. 여울이 지한에게 파혼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파혼이라니? ”
“당신 어머님이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일단 결혼부터 하고 예물을 주겠대. 예물은 결혼을 앞두고 서로 교환하는건데, 나 혼자 줄 거면 뭐하러 예물을 주고받아? ”
“그, 그게… 자기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서는 자기가 요구한 예물을 다 줄 수가 없으니까… 일단 대출 받아서 동생분 가방부터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보석류도 어떻게든 돈 마련해서 해줄게. 자기한테는 3~4억이 껌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거금이야. 한번도 만져본 적 없는… ”
여울과 지한의 차이는, 말 그대로 천지차이였다. 하늘과 땅이 다르듯, 두 사람의 입지도 입장도 달랐다. 어떻게 해서든 여울을 붙잡고, 결혼까지 성사시키고 싶었지만 12억이 없었던 그는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이란 대출은 전부 받았지만, 결국 보석 한 세트 살 돈도 모으지 못 했다. 전부인에게 연락해 사정이 생겨서 그러니 돈 좀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고, 전부인은 액수의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자신의 배경만 보고 달려든 너에게는 단돈 1원도 넘겨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지한은 현수에게 여울을 좀 설득해달라고 부탁해보기도 했지만, 현수는 ‘그래서 제가 누나의 스케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던거예요. 누나는 본인 스케일에 맞춰져 있어서 다른 사람의 스케일을 헤아리지 못 하거든요. 특히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스케일을요.’라고 할 뿐, 자기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결국, 지한은 파혼당했다. 지한은 전부인의 사람 자체가 아닌 전부인의 배경을 사랑해서 결혼한거였고, 전부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가 부도났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칼같이 이혼했고, 이를 여울이 알게 된 탓이었다.
“당신, 전부인 아버지 회사가 도산했을 때 이혼했다며? ”
“어? 그, 그게… 어, 어떻게 알았어? ”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다보니, 흘러들어오는 정보들이 좀 있어. 공교롭게도라고 해야 할 지, 그쪽 전부인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회사랑 우리 아버지 회사가 거래를 트려고 컨택중이라. ”
“…… ”
여울은 지한이 있는 그대로의 여울이 아닌 여울이 가진 ‘부’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 그것때문에 어머님까지 동원해 자신을 설득하려고 한 거냐고 물었다. 지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여울은 그런 그에게 파혼을 선언했다. 여울은 당신같은 사람은 최악이라는 말을 남기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요즘은 전남편에게서 연락 안 오시죠? ”
“최근에 돈 빌려달라고 한 번 연락 왔었어요. 그 뒤로는 찾아오지도, 연락하지도 않았고요. ”
“다행이네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연락할 일은 없을겁니다. ”
지한에게 남은 것은 빚과 망가진 평판이었다. 지한이 전부인과 결혼했던 이유와 이혼한 이유를 들은 현수가 회사에 퍼뜨린 탓에, 지한은 소위 말하는 ‘돈미새’로 낙인찍혀버렸다. 전부인을 지한에게 소개해줬던 상사는 그에게 ‘이런 사람일 줄 알았으면 소개해 주지도 않았다’면서, 소개를 부탁했던 것도 전부인의 아버지가 회사 사장이라는 걸 들어서 그랬던거냐고 따져 물었다. 결국 회사에서 돈미새로 찍혀버린 그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빚을 갚기 위해 회사를 꾸역꾸역 다녀야 했다. 물론, 그의 엄마도 결혼할 여자의 배경만 따지다가 파혼당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려 동네에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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